기술동향
RNA 편집과 기억·학습의 연결고리
- 등록일2010-08-09
- 조회수10951
- 분류기술동향
-
자료발간일
2010-08-09
-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 원문링크
-
키워드
#RNA
RNA 편집과 기억·학습의 연결고리
환경의 인지조율사 RNA (5)
RNA 편집과정이 단순히 환경의 정보를 RNA 수준에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보를 DNA에 재기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알아봤다. 이 과정을 ‘DNA 재부호화’라고 부른다. 면역세포들이 항체의 다양성을 만들기 위해 DNA의 유전정보를 재조합/재배열하고 돌연변이까지 일으키는 것처럼, 신경세포들도 RNA 편집과정을 통해 수정된 정보를 DNA에 재기록하는 방식으로 면역계를 모방한다. 만약 이러한 기제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행된다면 두뇌의 가소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알려진 후성유전학적 변화와 RNA의 역할이, 유전체의 질적 정보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많은 연구결과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RNA 편집이라는 과정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은 신경계, 그 중에서도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두뇌의 영역이다. 두뇌는 환경으로부터 습득한 정보에 맞춰 신경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가소성을 유지한다. 가소성이야말로 우리의 두뇌가 가진 위대한 능력인 것이다.
RNA 편집과정은 두뇌의 가소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분자적 기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RNA 편집효소들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RNA 편집효소의 표적은 대부분 신경전달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신경가소성을 세포 수준이 아니라 분자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RNA라는 물질의 중요성이 부각된다는 뜻이다. RNA는 외부의 환경변화를 인지하는 조율사로 기능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RNA에 일어난 변화가 DNA의 정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신경세포 내부에는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DNA 수리 효소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이들 중 몇몇은 RNA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DNA의 정보를 수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러한 DNA 수리 효소들이 RNA 편집과정에 의해 수정된 RNA를 주형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DNA에서 RNA로 흐르는 정보의 순차적인 흐름이 뒤집히게 되는 셈이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하는 두뇌의 특성상, 이러한 정보의 역순환은 가소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외부의 환경변화가 RNA로, 그 RNA의 정보가 유전체 속으로 각인되는 것이다1.
기억물질의 역사
이 가설은 아직 완전히 검증된 것이 아니다. 검증되기 위해서는 많은 실험적 증거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DNA 재부호화라는 가설은 아주 오래된 ‘기억물질’과 관련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1950년대에서 70년대, 분자생물학이 막 발전하던 시기에 RNA가 기억의 물질이라는 결정적 증거들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쥐가 새로운 행동을 학습했을 때, 두뇌에서 새로운 RNA가 생합성 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이 결과는 1962년 하이덴과 에가시(Hyden and Egyhazi)에 의해 미학술원회보에 출판됐다. 하이덴은 이 결과를 조금 더 밀어 부쳤는데, 각각의 새로운 행동을 학습할 때마다, 그에 걸맞은 종류의 RNA가 두뇌에서 생합성될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하이덴의 실험결과는 플렉스너(Flexner)에 의해 지지되기에 이른다. 기억을 고정하는 화학물질을 찾은 플렉스너가 그 물질을 투여하면 RNA와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플라나리아에서 추출한 RNA가 특수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결과들이 속속 등장했다. 기억의 물질로 RNA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이 형성될 때 두뇌에서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물질이 합성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 분자생물학자들과 생화학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분자생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지침서는 생명체의 기능을 분자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진적 환원주의는 기억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거대분자들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하지만 유명한 학술지에 발표된 이런 논문의 결과들이 대부분 재현되지 않았다. RNA가 특이한 행동을 야기하는 기억의 물질이라는 연구결과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결과가 베일러대의 조지 웅거(Georges Unger)라는 약학자에게서 나왔다2. 그는 암소공포증(Scotophobia)을 연구했는데, 간단한 전기충격으로 쥐가 어두운 곳을 기피하게 만드는 훈련으로 이러한 증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웅거는 쥐의 뇌에 어두운 곳을 기피하는 기억이 형성되었다고 가정하고 쥐의 뇌에서 기억 물질을 추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서 그쳤다면 위에서 언급한 실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웅거는 기존의 연구자들이 발표한 결과가 재현불가능했던 이유로 그들이 RNA를 기억의 물질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웅거는 RNA를 추출해서 주입하는 과정에서 펩타이드가 오염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기억의 물질은 RNA가 아니라 펩타이드라는 것이다. 펩타이드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웅거는 암소공포증을 유도하는 스코토포빈(scotophobin)이라는 물질을 발견했다는 결과를 네이쳐지에 출판한다. 암소공포증이 유도된 쥐의 뇌에서 추출한 스코토포빈을 학습되지 않은 쥐에게 주사하면, 곧 그 쥐에서도 암소공포증이 나타났다. 결과는 놀라웠고, 많은 연구자들은 웅거의 결과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 기억이 펩타이드와 같은 고분자 물질에 의해 전이된다는 웅거의 실험결과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러한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 약학자였던 웅거가 수행한 정제과정이 더 놀라운 것이었다. 웅거는 RNA의 오염을 방지하고 순수한 펩타이드를 정제하기 위해 생쥐 4000마리의 두뇌를 사용했다. 게다가 그는 정제된 펩타이드의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하고 보존된 부위와 가변 부위의 기능을 추측하기도 했다. 특히 웅거는 명망있는 과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결과를 단순히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곧 반박이 잇따랐다. 웅거의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쳐지는 웅거의 논문을 실으면서 다른 연구진들의 반박논문과, 웅거의 재반박을 함께 실었다3. 웅거는 점차 공인된 학술지가 아니라 대중적 출판 등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주장하기에 이른다4. 1978년 웅거가 죽으면서 논란은 점차 사그라들게 되지만, 1970년대 중반 중추신경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엔돌핀 등의 펩타이드가 정제되면서 펩타이드가 기억의 물질이라는 가설은 여전히 과학자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게 된다.
급진적 환원주의, 정보 이론, 그리고 생명이라는 복잡한 현상
방사선 결정학과 생화학에 의해 주도되었던 분자생물학의 여명기에 생명현상을 분자에 귀속시키려는 급진적 환원주의가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웅거의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분자생물학의 탄생을 다룰 때 많은 철학자들은 ‘정보이론’이 분자생물학에 미친 영향을 거론하곤 한다. DNA 이중나선과 트리플렛 코드의 발견이 당시 유행하던 사이버네틱스나 정보이론과 매우 유사한 측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생물학에서 웅거의 기억물질이 받아들여지고 기각되는 과정 이전에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발생학과 면역학에서도 존재했었다. 또한 발생학과 면역학에서 RNA를 일종의 기억물질 혹은 유도물질로 가정했던 연구들은 과학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기억이라는 일종의 정보개념을 다루는 신경생물학에서만 상황이 조금 달랐던 셈이다. 신경생물학자들은 발생학이나 면역학자들과는 달리 정보개념을 누구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론(semantic)적인 정보개념이 기억을 연구하는 신경생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고, 당시 진행되던 생명의 분자화는 웅거의 결과가 받아들여지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발생학자들과 면역학자들에게는 DNA의 정보개념과 더불어 단순히 은유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정보이론이 의미론적 정보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억을 다루던 신경생물학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현상을 직접 분자로 환원시키려던 급진적 환원주의와 분자화의 유행, 여기에 정보 이론이 융합되던 1970년대에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에게서 정보 개념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세포학의 발전 때문이었다. DNA나 RNA, 단백질과 같은 분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세포라는 복잡한 구조로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급진적 환원주의는 설 땅을 점차 잃게 된다. 이와 함께, 기억이라는 현상을 물질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들도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다루는 상위 수준의 연구들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기억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들의 연결망 속에 존재한다는 관점이 점차 과학자들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웅거의 연구는 1970년대 분자생물학자들이 의미론적인 정보 개념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보라는 개념은 분자생물학에서 계속 사용되었지만, 은유적인 의미로 한정되었다. 유전자 코드를 설명할 때는 의미론적 정보개념이 유용했지만 그 이외의 분야에서 의미론적 정보 개념은 별로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물리학과 화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던 분자생물학 혁명은, 생명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맞닥뜨리기 시작하면서 점차 환원주의적인 동시에 비환원주의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더 이상 분자생물학은 물리학자들이나 화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하위 분과가 아니라, 그 동안 따로 발달해온 생물학의 분야들이 잘 어우러진 독립된 분과로 정착하기 시작한다5.
새로운 RNA
RNA라는 분자가 기억과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1960년대 초반의 연구결과들은 곧 기각되었다.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RNA나 단백질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가설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정확히 어떤 분자가 어떤 기억을 담당하는지에 관해서는 알기 힘들었다. 단백질 생합성이 기억의 형성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많은 생물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이다. 단지 관점이 변했을 뿐이다.
급진적 환원주의가 분자생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1960~70년대에는 그렇게 생성된 물질 안에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생각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정보는 세포와 세포의 사이, 그 네트워크 속에 존재한다라는 관점이 지지를 받고 있다.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 새롭게 합성되는 단백질과 RNA들은 이러한 세포 간의 연결을 조절하는 도구로 여겨진다.
RNA 편집과 DNA 재부호화라는 현상이 기억과 학습이라는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분자생물학자들이 발전해온 이러한 기틀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가 RNA에 기록된다는 것이, RNA라는 물질이 외부환경의 정보를 담는다는 식의 의미론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RNA는 외부환경의 정보를 세포내부로 전달할 뿐이다. 그 전달되는 방식은 의미론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환경적 변화가 어떤 단백질의 전령 RNA를 편집하느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외부 환경의 전체적인 정보를 연역해낼 수 없다.
RNA 편집과정이 외부환경의 조율사라는 의미는,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통해 기억과 학습을 연구하는 수준의 하층부에, RNA에 의해 조율되는 분자적 기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웅거가 시도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과학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웅거의 실험이 잊혀지는 과정에서처럼 과학이라는 학문체계는 재현가능성의 여부로 잘못된 실험결과들을 곧 골라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잊혀졌던 RNA라는 물질이 다시금 기억과 학습에 연결된다는 것만은 참 흥분되는 일이다. 과학의 역사는 망각과 재발견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 자세한 내용은 내용바로가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지식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