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고서
바이오 정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자료 제공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 미래사회 - “무세포 합성생물학” 편]
제9화 “그들이 만들어온 미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2040년 겨울. 유엔 총회에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결의안이 3년의 유예기간을 조건으로 통과되었다.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사용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는 유엔 회원국이라면 반드시 ‘썩는 플라스틱’만 사용해야 한다는 국제규약이 통과된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문제로 꼽혀왔지만, 발전된 생명과학기술이 조금씩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인공미생물도 개발돼 쓰레기 처리장 등에서 쓰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미생물 분해 공정으로 대규모의 플라스틱을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개발도상국 등에선 이런 처리시스템을 완전히 갖추기도 어려웠다. 결국, 지구 전체에 쌓여가는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해결하기엔 무리가 따르자 유엔은 결국 초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야 이미 개발돼 있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어차피 큰 비용을 들여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 처리해야 하는 선진국 입장에선 ‘썩지 않는 플라스틱’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제재를 따르기 쉽지 않았다. 개도국 입장에선 유엔의 결정이 대단히 유감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다. 유엔이 개도국의 입장을 고려해 이번 총회의 결정사항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이 숙제는 유엔 산하 과학기술인 포럼에서 중대 과제로 논의하게 됐다. 유엔의 결정은 결국, ‘3년의 시간을 줄 테니, 과학기술인들이 머리를 맞대 개발도상국에서도 쓸 수 있는 초저가 생산이 가능한 ‘썩는 플라스틱 생산법을 개발해 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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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문제는 결국 미생물 기반 합성생물학 관점에서 해결을….”
“미생물 기반 합성생물학 기반 생산 시스템의 효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서 하는 이야기입니까. 그 방법으로는 절대로 개도국들이 원하는 수준의 저가 생산이 가능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일단 그 방식을 기초로 연구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답을 찾아보아야지 싶소.”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선 국제공동연구팀을 꾸릴 인선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엔 뉴욕 본부의 한 대형 회의실. 유엔 사무총장의 방망이질 몇 번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 전 세계 생명과학 및 화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은 며칠째 ‘초저가 썩는 플라시틱’ 개발을 목표로 저마다 의견을 쏟아내며 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회의장 한쪽 편, 한국에서 온 국가생명정보기술원 강현 기술지원단장이 눈살을 찌푸리고 앉아 있었다.
“혼자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한국대표는 할 말 없으신가요?” 현의 어깨 뒤로 나타난 한 여성 참가자가 놀리듯이 말을 걸었다. 환경단체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사이언스피스의 조아영 연구센터장이었다. 과학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연구기반 환경단체’ 중 대표적인 곳이다. 현은 사이언스피스가 올바른 일을 한다고 여겨 여러 가지 일에 협력해 왔다.
“단장님 건강이 안 좋다고 이미 생명과학계 전체에 소문이 쫙 돌았어요. 괜찮으신가요? 여기까지 오셔도 돼요?”
“사용 중인 항암제 효과만 정기 확인만 하면 되니까요. 이쪽 병원에서 가능합니다.” 아영이 안부를 묻자 현이 대답했다.
“이번 회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답이 하나밖에 없는 문제 아닙니까. 뻔한 이야기를 아이디어라고 내놓고 싶진 않아요.”
지식과 정보가 충분한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결국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현의 말대로 수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 시끄러운 난상토론의 결과도 이미 시작 전부터 뻔한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명현상을 원하는 성질의 화학소재를 얻는 것이 가능한 ‘합성생물학’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회장에 있는 생명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생명현상을 세포 이하 수준, 즉 DNA나 단백질 등의 레벨에서 규명하는 ‘무세포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미생물기반 합성생물학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보는 식의 응용을 해 보려는 생각도 잠시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터였다. 20여 년 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던 이 기술은, 최근 10년 사이 급속도로 발전해 합성생물학의 효율을 큰 폭으로 끌어올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낸 이후의 과정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연구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전 세계과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시끄러운 토론의 본질은 결국 ‘누가 이 무거운 짐을 떠안을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었다.
“거기까지 알고 계신다면 저분들 지금 왜 우왕좌왕하는지도 아실 것 아니에요. 과학자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끼신다면 자연과 환경을 위해 저희와 함께 나서시는 게 어떻… 아. 어머 나 좀 봐. 미안해요.” 아영은 말을 쏟아내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현이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떠올린 탓이다.
사이언스피스는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항상 다른 연구기관 인재들을 몰아세워 협력을 얻어내곤 했다. 그렇게 매사 사람을 이용하는 듯한 태도는 현을 꽤 지치게 하곤 했다.
“아깝네요. 한마디만 더 하셨으면 다시 안 보자고 할 수 있었는데.” 현이 놀리듯이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희는 이렇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잘 아시잖아요. 사실 과거에 저희랑 개발해 주신 해양 미세플라스틱 분해 세균도 예산이나 해양 안전성 문제로 실용화가 안 돼서 안타까웠는데(2019 바이오미래유망기술 9회차 참고), 이번 일이라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미생물 분해 세균이요? 세균이라면 세포… 아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군. 잠시만요. 저 한국에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께요.” 현은 아영과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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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현은 밤 사이 준비해 온 자료를 들고 유엔 생명과학자 포럼 발표석에 섰다.
“안녕들 하셨습니까. 강현입니다.”
현이 갑자기 단상으로 올라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수근대기 시작했다. 생명과학분야 젊은 천재연구자로 불렸던 현은 최근 수년 사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회의장 내에 있는 사람 중 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즉시 현의 입술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지금 세계 생명과학계 선후배님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건, 기존에 자연계에 존재하던 세균의 유전자를 일부 교정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구현하려는데 있었습니다. 교정과정에선 당연히 무세포합성생물학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을 하셨을테고요. 맞지요?”
“…….”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기능을 살펴보고 교정해 나갈 세포, 기준이 될 세포 개체를 뭘로 할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그 상태로 기능을 설계하자니 일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겠지요. 결국 시행착오가 필수적이고, 얼마나 실험을 반복해야 할지, 아득하게 여겨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나 싶어 서로 의견만 계속 묻게 되셨을 거고요. 그렇지요?”
“그건 강 단장이라고 별수가 없지 않소. 지금까지 누구도 이런 걸 만든 적은 없었단 말이요. 실험적인 연구야 저마다 해 왔지만, 대량생산을 하라니. 그걸 누가 갑자기 하겠다고 선뜻 나설 수가 있겠느냐고요.” 러시아 억양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한 과학자가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은 회의장 홀로그램 시스템에 스위치를 눌렀다. 곧 세포 모형의 입체영상이 허공에 투사되자 현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떠시겠습니까?”
영상이 공개되자 곧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뭐야. 미리 몇 년 연구한 것 아닌가?” 일본의 한 과학자는 넋두리하듯 말했다. 독일의 연구자는 “schön sein(아름답군)”이라고 한마디를 한 후 홀로그램 화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건 인공 세포 설계도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생물은 플라스틱을 세포 내에 축적하면서 생산하잖아요? 그러니 생산량도 미생물 크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문제를 무세포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거대한 인공 세포를 개발해서 해결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기준이 되는 세포가 없어서 문제가 된다면, 처음부터 세포를 새로 만들면 될 테니까요. 나머지는 뭐 금방 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제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이랑, 그간 모아 두었던 데이터랑 우리 연구소가 가진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밤사이에 서너 개의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돌렸는데, 그중 가장 나아 보이는 걸 가지고 온 겁니다. 오늘은 방향만 제시해 드리기 위해 기본적인 형태만 갖췄는데, 제대로 만들 때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겁니다.”
현이 내놓은 세포 설계도 한 장은 회의장 분위기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서로 눈치를 보던 연구자들은 ‘이 구상이라면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도 참여하고 싶다.’는 목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강현 단장과 한국 국가생명정보기술원에서 이 연구를 주도해 줄 수 있습니까?” 회의를 주제하던 미국 국립학술원(NAS) 임원이 마이크를 잡고 물었다.
“아유. 아시다시피 저는 요즘 직접 연구를 총괄할 사정이 못 됩니다. 대신 다른 생각이 있는데….”
“어떤 겁니까? 강 단장 의견이라면 우선적으로 고려하겠소.”
“환경과 관련된 문제도 꽤 크고 하니, 사이언스피스가 맡아주면 어때요? 나름의 실적도 있고, 어려운 부분은 저희 국제 연구진이 돕는다면 분명 잘 해낼 겁니다.”
회의장에 있던 아영은 갑자기 사이언스피스 이야기가 나오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져 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단상에 서 있던 현은 아영과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한쪽 눈을 찡그려 보였다.
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 김하성(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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