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사회통념 정보 믿기보단 현실적 작전 펴야”
[제8회 BT 전문가 좌담회] 평균 1조원 같은 이야기는 과장… 계산법, 개발약품 따라 달라
 
2009년 09월 03일
 
 
1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서울 회의실에서 제8회 BT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신약시장에 뛰어드려는 사람들을 겁먹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연구개발비 1조원, 성공확률은 5% 미만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사실일까. 신약개발 산업의 어려움을 이야기 할 때 누구든지 인용하는 ‘공식’ 같은 말이다. 그러나 정말 1조원이 들어가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국내 제약회사 실무진을 비롯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1일 서울 서초구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서울 회의실에서 열린 ‘제 6차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신약개발비의 실제비용 등 현황을 분석하고 국내 신약개발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오갔다. 이관순 한미약품 연구센터장, 이상준 코오롱생명과학 사업본부장, 추연성 LG생명과학 상무, 최경업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 등 신약개발 실무자, 허가 및 약가 관련 전문가가 참석했다. 현병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을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질병의 종류와 약의 타입에 따라 다르게 산출된다”며 “개발비보다 중요한 것은 각 기업에 적합한 제약개발 전략을 세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균개발비 1조원, 정말 진실인가?

▽현병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바이오 분야에 대기업 등 산업계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1조원 투자에 성공확률 5%’라는 근거 없는 정보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밝히는 차원에서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 센터 측에서 조사한 결과 ‘신약개발비 1조원’은 미국의 대형 제약업체(빅파마) 들이 만들어 홍보한 정보였다. 소비자 시민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1조원에는 실패비용, 기회비용, 세금공제 등 1000~3000억 원 정도가 합쳐진 것이었다.

▽이상준 코오롱생명과학 사업본부장=종근당 재직 당시 항암제 하나를 개발했다. 개발기간은 10년 정도였고, 개발비는 총 150억 원쯤 들었다. 임상시험 등 물리적인 기간이 필요하므로 보통 신약개발기간은 10~15년 정도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개발비는 천차만별이다. 보통 임상 2상까지만 하면 신약허가가 나오는데 항암제의 경우 개발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다. 위궤양제는 400~500억 원 정도 투자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코오롱생명과학에서는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1999년에 시작해 2012~2013년 정도에 발매를 예상하고 있다. 개발기간이 14년 정도 걸린 셈이다. 전임상 단계까지 240억 원, 임상단계에 10억 원, 그래서 개발에 총 250억 원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산출한 비용은 다이어트 비용이다. 인건비나 기타 실패비용 등을 따지지 않고 지금까지 투자한 돈을 그대로 합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성공률을 감안하고 추가로 드는 개발기간을 비용으로 환산한 결과까지 합산한다. 즉, 신약개발비를 제대로 따져보려면 직접비용(아웃오브포켓머니)과 성공률, 개발기간을 모두 고려한다는 말이다. 1조원이라는 비용의 합리성은 이렇게 정확히 따지고 우리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둬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추연성 LG생명과학 상무=아웃오브포켓머니와 인건비를 합산하면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신약개발에도 인력이 필요한데, 가령 100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치면 1인당 2억원이 든다고 해도 200억 원이 추가된다. 개발기간이 5년만 걸려도 인건비만 1000억 원이다. 여기에 순수연구개발비와 실패비용 등을 더하면 1조원이라는 금액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어느 회사가 매년 3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여 매년 3개씩의 신약을 낸다고 하면 1개의 신약개발 당 1조원이 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화이자 같은 대형 제약회사는 매년 연구개발비로 5조원 정도 쓴다고 한다. 이들이 1년에 몇 개정도의 신약을 만들어 내는지를 조사해 보면 쉽게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관순 한미약품 연구센터장 : 미국 대형바이오기업의 자료를 보면 복제약은 신약에서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100개의 신약이 개발되었다면 20개만 신약으로 쳐서 총 투자비용의 평균을 산출하게 된다. 물론 실패한 프로젝트의 투자비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니 신약개발비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하게 ‘신약 하나 개발하는데 1조원’이라고 볼 것이 아닌 이유다. 1조원 안에는 복잡한 계산이 들어간다.

▽최경업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신약 개발비용을 따질 때 화학적 조성인지 생물학적 조성인지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미 몸에 있는 것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화학적인 공정을 거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운 화학물질로 약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그 물질에 대한 라이선싱비 등도 포함돼 훨씬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 따라서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1조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수식을 세우느냐에 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추연성 상무=신약 하나가 나오기까지 들어간 모든 돈을 다 생각하면 1조원은 진실이다. 개발에 들어갔다고 전부 성공하는 것이 아니므로 프로젝트 실패비용까지 다 포함시키다 보면 1조원이라는 계산은 충분히 나온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할때는 직접 투자된 연구개발비에 실패프로젝트비, 라이센싱비, 인건비 등 다양한 요소를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LG생명화학에서 개발한 신약의 경우에도 상용화 성공 단계별 기술수출료(마일스톤), 로열티, 원료수출 등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만 계산해도 해당 프로젝트로 보면 벌써 투자대비 몇 배의 수익을 냈다. 지금까지 신약연구에 투자한 총 비용을 따지면 성공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모든 기업이 신약개발의 전 부문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어느 부분까지 투자할 것인지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조원이라는 액수 자체가 중소제약사나 개도국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꺾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연구개발 과정을 잘 알고 있고, 어떤 단계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지도 알기 때문이다. 신약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체 연구개발 단계 중 어느 단계를 지향할지 목표를 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적은 투자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상준 본부장=한국과 달리 해외 거대기업은 임상 시험을 할 때 백업을 철저히 하므로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거대기업은 임상 시험을 할 때 백업 후보물질을 충분히 가지고 가므로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비용이 많이 든다. 특허기간은 출원부터 20년간 보호를 받으므로 개발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곧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결과가 된다. 즉 백업에 비용을 들여서 신약개발을 하는 것이며, 이런 시간과 기회비용을 따지자면 1조원이 허구가 아닐 수 있다.

▽이관순 센터장=그렇지만 현가 개념으로 계산했을 때 신약 개발에 1조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약의 범위에 따라 개발비용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평가 개념으로 생각하면 신약개발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비용까지 합산하고 부대비용까지 다 합산해 나누기하는 식이라면 A라는 신약 개발에 얼마가 들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추연성 상무=물론 개별 프로젝트별로도 연구개발비를 산출한다. 예를 들어, 항암제 개발이라면 그에 따른 돈만 따로 계산하고 보고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운영한다고 보면 전체 연구개발비로 들어간 모든 프로젝트를 다 넣을 수밖에 없다.

▽최경업 평가위원=프로젝트별로 연구비를 산출하는 것은 맞지만, 신약개발비를 계산할 때 다른 것까지 엎어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관순 센터장=회사는 연 단위로 운영된다. 연구개발 비용을 전부 합산해 실패한 연구비도 합산해야 순이익을 계산할 수 있다. 문제는 연구개발이 프로젝트별로 가는데 신약개발비는 제약회사의 전 프로젝트를 합산한 것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신약개발에 일률적으로 얼마가 들어간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500억만 있어도 충분히 글로벌 신약을 만들 수 있다.

계산방법 따라 달라, 통계 숫자 보단 전략적 분석가지고 전략 수립해야
 
좌담회에는 참석한 BT전문가들, 왼쪽부터 헌병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 이상준 코오롱생명과학사업본부장, 추연성 LG생명과학 상무, 최경업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시위원, 이관순 한미약품 연구센터장
 
▽이상준 본부장=맞다. 신약개발비는 천차만별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처럼 환자가 적은 분야와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환자나 치료제가 많은 분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희귀질환은 환자가 적기 때문에 임상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든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많을수록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회사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이 큰 쪽을 목표로 약을 개발한다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라이선스하는 전략을 취하고,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때는 글로벌신약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분야는 국내외 정부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회사의 선택이다.

노바티스가 만든 신약 ‘글리벡’은 특정 골수성 백혈병 치료를 타깃으로 개발함으로써 희귀질환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이 약의 판매로 노바티스는 2008년 3조 7천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스위스의 악텔리온(Actelion)도 혈관 확장과 관련된 치료제를 만들면서 폐동맥고혈압질환으로 한정해 희귀질환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이 회사도 작년 매출이 1조3000억 달러에 이른다. 또 메드트로닉(Medtronic
) 은 BMP-2라는, 뼈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을 개발해 의료기기로 허가받고 미국에만 6억 달러를 팔았다. 이처럼 신약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이다. 몇 조원이 드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추연성 상무=결국 기업이 어떤 방향을 설정하는지가 관건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개발로 먼저 허가를 받고 적응증을 추가해 나가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 벤처들의 전략인데, 그들의 전문성과 인프라가 좋아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회사가 외국시장을 대상으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외국회사와 함께 가야하는데 이 때 서로 남는 게 적을 수도 있다.

다른 방법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관심이 있는 시장이 큰 신약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들 신약후보들이 개발단계에서 경쟁력이 확인되면 그들과 공동개발을 하여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고, 경쟁제품과 약효 등이 비슷하여 큰 회사들의 관심이 적다면 이머징 마켓으로 진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이머징 마켓 직접 진출로 로컬 제약사들은 시장성이 큰 신약을 이들 회사로부터 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약효 등이 비슷한 신약만 개발해도 이머징 마켓의 로컬 제약사에 수출하여 충분히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회사의 사정이나 역량에 따라 각자 자신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면 될 것 같다.

▽이관순 센터장=신약 개발은 굉장히 리스크가 크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에서 연구개발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OECD 국가의 유럽 재원에서 세액 공제는 적게는 10%, 많게는 30%까지 준다. 우리는 3~5% 수준이다. 7월 1일 민관협동회의에서 세액공제를 20~30%로 올리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신성장동력과 원천기술 분야만 포함돼 바이오신약만 혜택을 보게 생겼다. 케미컬 신약 부분은 빠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 신약개발이 활성화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경업 평가위원= 복제약이나 개량신약 등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심평원의 약가는 단순히 공식에 대입해 책정됐었는데 이런 것도 연구개발을 주춤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개발자 쪽에서 요청하면 연구비 등을 고려해 약가 정책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보겠다.

▽이상준 본부장=단지 1조원 때문에 신약개발을 망설이는 것은 좋지 않다. 회사마다 자신의 수준에 따라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단, 한국만 목표로 신약개발을 해서는 곤란하다. 아시아, 유럽, 미국뿐 아니라 이머징 마켓을 바라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각자 타깃 질환의 설정 등 신약 개발의 틀을 정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

▽추연성 상무=회사가 목표를 ‘신약개발’로 설정했다면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1조원’정도의 투자를 각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약개발의 모든 과정을 한 회사가 전부 맡아서 처리 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회사들과 여러 종류의 협력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각자에게 맞는 전략만 있다면 1조원은 진입장벽이 될 수 없다.



참석자들이 밝힌 현실적인 신약개발비 분석 방안은?

①“천차만별인 신약개발비, 시장과 상황을 살펴보고 목표를 분명히 해야.”
②“글로벌 시장에 진출 등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수요시장이 있는 약품부터 접근하자.”
③“1조원은 아니더라도 신약 개발은 리스크가 큰 사업. 국가에서 연구개발세액공제 등의 혜택 제공해야.”

※ 이 좌담회 시리즈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와의 공동기획에 의해 취재, 보도되고 있습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신약개발, 사회통념 정보 믿기보단 현실적 작전 펴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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