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고서
바이오 정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자료 제공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 미래사회 - “엽록체 바이오공장” 편]
제7화 “신뢰와 편애”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5년 전 출범해 국내 굴지의 바이오 농업기업으로 거듭난 기업 ‘HKBS’. 생산시설 자동화 분야 전문기업 날리지뱅크시스템(KBS)과 바이오 전문기업 한스(HANS)가 공동으로 설립한 이 회사는 출범 당시부터 세간의 큰 화제를 모았다. 굴지의 기업 두 곳이 동시에 달려들었으니 얼마나 승승장구하겠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실상은 소문과 달랐다. HANS는 바이오 전문기업이라지만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기술을 이용해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는데 강했다. 출범 초기 바이오전문가인 김혜영 박사를 사장으로 초빙해 연구개발을 진두 지휘하도록 했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연구역량 부족을 김 사장 한 사람의 힘으로 막아내기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출범 이후 다양한 신품종 개발에 성공하며 농업시장 개척에 성공, 5년 만에 회사를 흑자 궤도로 올려 놓았다.
HKBS 경영진은 회사의 더 큰 미래를 위해 이제는 ‘신약개발에 뛰어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잡한 유전자 편집기술 등을 총동원해 신품종 작물을 개발해도 그 가격은 아이들 용돈으로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반면 의약품은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농작물에 비해 훨씬 큰 이익이 보장됐다. 물론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신약개발은 일단 한 번 성공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시기에 김혜영 사장이 믿는 구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수년 전 인기 연구분야로 급부상한 이후 지금까지 신약개발 분야 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엽록체 바이오공장’ 기술을 도입하려는 거였다. 엽록체를 이용하여 백신, 의료용 단백질, 항체 등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이미 10여 년 전 실용화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동물에게 사료를 먹이기만 해도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현실이 돼 있었다. 2035년 이후엔 이미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는, 백신 생산용 농작물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농업분야, 특히 식물의 세포, 혹은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를 편집해 형질을 전환하는데 특기를 갖고 있는 HKBS 입장에선 이 기술은 조금만 더 연구해 나간다면 복잡한 신약개발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기반기술이었다. 농업분야 바이오 기업이라면 이 기술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녀가 두 번째로 믿는 건 ‘국가생명정보기술원’과의 공동연구였다. 특히 수년간 협력과정을 진두지휘해 온 ‘강현 단장’에게 그녀는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강 단장은 회사 출범 당시부터 연구개발 과정에서 생기는 골치 아픈 문제를 여럿 해결해 주었고, 수년간 회사의 성장을 도와온 큰 은인이었다. 물론 매출에 따른 기술료는 충분히 지급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김 사장은 동전 한 닢이라도 더 연구소로 보내지 못해 안달을 했다. 그녀에겐 연구소, 그리고 강 단장과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형식상이지만 억지로 현을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앉힌 것도 김 사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강현 단장이 암 투병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마치 청천벽력과 같이 들렸다. 연구소에는 여전히 출근한다지만, 직원관리에 집중하기 위해 직접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가 들리자 그녀가 느낀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 사장은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황급히 자율주행차를 호출하면서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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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뭐하러 오십니까. 정밀 검사차 하루만 입원한 거라니까요.”
“걱정이 되어서 그렇죠. 우리가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니고.”
현은 일부러 병원까지 찾아온 김 사장이 고맙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목소리 너머로 강한 염려가 담겨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현을 걱정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애정보다는 업무 파트너가 없어지면 어쩌나 싶은 우려가 더 크게 담겨 있었다. 그런 김사장을 보며 현은 어쩔 수 없이 업무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그간 저와 진행해 주시던 공동연구 분야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인수인계할 생각입니다.”
“강 단장도 알잖아요. 우리 올해부터 신약개발도 들어가야 해요. 정말 강 단장이 직접 봐 주지 않아도 괜찮을까? 난 아주 불안해 죽겠어요. 여기서 멈추면 회사 큰일 난단 말이야.” 김 사장은 거의 사정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희 쪽에 맡겨 주시지요. 너무 염려 마시고요.” 현이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필요한 검사를 마치고 퇴원한 현은 별다른 일 없었다는 듯 집을 나섰다. 정확히 8시, 책상에 놓여있는 커피머신에서 쪼르륵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바로 아래층 회의실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항상 있는 일일 업무 진행 회의였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한 ‘언택트’ 시대라고는 하지만, 같은 사무공간 안에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루에 한 번, 아침회의를 통한 업무공유만큼은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해야 한다는 것이 현의 지론이었다.
일상적으로 진행하던 업무조정 회의를 마치자, 현은 전원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e메일로 어제 공지드린 내용은 다들 보셨을 겁니다. 건강상 문제로 저는 연구업무에서 손을 뗄 생각이에요.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제가 맡은 서너 개의 기업지원연구를 우리 연구실 내에서 여러분들이 나눠서 맡아 주었으면 합니다.”
연구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자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강 단장이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컸다. 그러나 이 점은 현이 지금까지 무리해 온 것이다. 단장직을 맡으면서도 몇 개나 되는 연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관리직과 연구직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연구실 운영시스템 자체는 지금이 도리어 더 타당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따라서 이 부분을 하나씩 차근차근 모두와 면담을 하며 업무를 조정해 나갈 계획입니다. 우선 오늘은, 최영일 선임연구원님. 김수민 박사와 함께 제 방에서 잠시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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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BS 건입니다. 두 분께 맡기고 싶은 건.” 현이 아까부터 들고 다니던 머그잔에서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 들이켜면서 말했다.
현의 입에서 HKBS 이야기가 나오자 최영일 박사는 더 이상 아무말 못한 채 현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간 워낙 현과 협력적으로 일을 했던 곳이라 ‘이곳 만큼은 투병 중에도 직접 맡으시려고 하실지 모른다’는 이야기마저 나왔던 곳이라 의외였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농업혁신을 주로 하던 업체에요. 의약분야 시장으로도 진출하고 싶어 합니다. 엽록체 바이오공장 기술을 도입하고 싶어하니, 그 분야 연구를 두 분이 도와주시면 될 거에요.”
“예.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최 박사는 낭랑하게 말했다. 상사의 지시라면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타입이라 더 이상의 이견을 갖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수민은 달랐다. 최 박사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데도 수민은 단장실에 남아 다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장님. 저….”
“왜. 그래요? 돌아가도 괜찮아요.” “아뇨. 저, 괜찮으신가 해서….”
“뭐가?” “연구 그만하시기로 한 거요. 단장님 연구 좋아하시잖아요. 관리 업무보단 훨씬 더 좋아하시잖아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나도 이렇게 결정하고 편하진 않아요.”
“그게…. 다른 문제도 있는데요. 저는 사고만 치는데도 단장님이 중요한 일은 저한테만 맡긴다고, 다들 뒤에서 손가락질하곤 하거든요. HKBS 일 나눠 주신 것도 그래요. 단장님이 5년 동안 김 사장님과 협력하면서 키워오신 회사라면서요. 거기 제가 참여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요. 혹시 누구 다른 분을…” 수민은 여전히 연구소 생활이 힘겨운지 글썽거리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민은 역량에 비해 연구실 내에서 동료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덜렁거리는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는 탓이다. 그런 사실은 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다고는 예상치 못한 터였다. 난처해진 현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김수민 박사. 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방금 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다른 친구들도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고.”
“네?”
“제가 사람을 편애하거나 해서 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김 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래요. 엽록체 내부의 특정 부위에 꼭 필요한 유전자만 발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우리 연구단에서 누가 있지.”
“저…입니다……. 두세 사람 더 있겠지만 아마 단장님이나 저처럼 정밀하게는….”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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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은 단장실을 빠져나와 연구실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엎드렸다. 창피한 마음에 잠시 쉬고 싶었지만, 사수(?)인 최영일 박사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갖가지 일들을 평소처럼 기계적으로 분류해 던져주었고, 결국 수민은 뺨이 벌겋게 된 채로 연구실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퇴근 시간이 돼 갈 무렵, 수민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함을 느꼈다. 퇴근에 앞서 겨우 그날 맡은 일의 마무리를 하고 있던 그녀의 개인 데이터 단말기에서 ‘딩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메시지 하나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기운 내시길. 자신을 좀 더 믿어주길 바랍니다. - 강현.”
별 것 아닌 메시지 한 통. 최근 누구나 사용하는 영상 메시지가 아니라, 2010~202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이 주로 사용하는 구식의 텍스트 메시지. 하지만 수민은 퇴근 전 책상 머리에서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고 곱씹어 읽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방을 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는 새롭게 다짐한 듯 중얼거렸다. ‘HKBS라고 했나. 내일 필요한 자료를 싹 다 읽어봐야지.’
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 이효준(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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