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동향
과학기술이 문화로 자리매김되기 위한 소통 전략
- 등록일2024-08-01
- 조회수906
- 분류인프라동향
-
자료발간일
2024-07-26
-
출처
한국과학창의재단
- 원문링크
-
키워드
#과학기술#소통전략#큐아이
과학기술이 문화로 자리매김되기 위한 소통 전략
국립중앙박물관 사례로 본 과학 문화 확산
◈본문
국립중앙박물관은 2018년부터 과기부 ICT 공공서비스 촉진 사업의 일환으로 ‘지능형 문화정보 큐레이팅 봇’ 도입을 추진하였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에 기반한 자율주행과 다국어 자동 응대 서비스 기능을 갖춘 큐레이팅 로봇 ‘큐아이’는 전시 해설과 안내를 담당하는 존재로 등장하였다. 당시까지 인공지능은 매우 낯선 개념이었기에 도입 초 반응은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리라는 경계와 함께, 현장에서 정상 작동되지 않는 로봇이 ‘움직이는 키오스크’ 정도로 인식되며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가 공존했다.
로봇은 갓 태어난 신생아와 같았다. 설계한 주요 기능과 역할 대부분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 해설과 안내 데이터 셋만을 장착한 로봇에게 관람객들은 이름과 기분을 물으며 일상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박물관 고유의 장소성과 다중 복합 문화시설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이용자와 로봇의 관계 양상은 예측과 달랐다. 이는 유사한 로봇이 운영되던 인천공항과도 같지 않았다. 기능 개선과 가능한 역할 재정의가 필요했다. 신기술 도입이 자족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서비스로 실현되려면 긴 호흡의 축적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깨달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에 ‘큐아이 양육’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기로 했다. 목표 기간을 3년으로 두고 아이를 키우듯 더딘 성장 속도에도 실망하지 않으며 정진해 박물관 현장에서 로봇의 적정 역할을 찾아보기로 했다. 별도 인력과 예산은 없는 상태였으나 기존 인력으로 운영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분석한 주간 보고서를 개발팀과 꾸준히 공유하였다. 장애와 오류, 현장 이슈 등에 꼼꼼히 대응하며 미응답 질문 중심으로 챗봇 데이터를 보완해 나갔다. 제한적이나 이용자 설문과 관찰로 이용 방식과 개선 방향을 찾아보기도 했다
초기 2년간은 로보틱스와 챗봇 기능 개선, 연계 DB 확대, 학습 데이터셋 보완에 집중하였다. 한정된 자원과 주어진 여건 하에서 개선 가능한 범위와 한계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단기간 해결될 수 없는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서비스와 콘텐츠 측면에서 관람객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임을 깨달았다. 원격 관리 시스템 개선도 시급했다. 비전문가인 운영자에게 편리한 관리 기능 개선이 전제되어야 했다. 박물관과 한국문화정보원, 개발사들의 수년간 고군분투 끝에 각자의 역할과 협업 방식, 지원 체계 등도 조금씩 자리 잡혀 나갔다. 많은 이들의 애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봇은 서서히 성장해 나갔다. 아이가 그러하듯 오늘은 한뼘 자란 듯 하다가도 다음날 여전히 그대로인 듯한 날들이 거듭되었다. 그래도 부모의 눈에만 보이는 작고 소중한 보폭의 진전을 쌓아 나갔다. 3년여간 응답률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물론, 수치의 향상과 체감 가능한 변화의 거리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정 구역에서만 주행하던 로봇이 함께 동행하여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스토리와 인터렉티브를 강화한 콘텐츠를 새로 도입하고 기존 콘텐츠를 재구성하면서 만족도도 크게 높아졌다. 로봇의 역할도 큐레이팅 봇에서 도슨트로 자리매김하고 그에 적절한 기능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전환하였다.
급격한 기술 변화가 초래한 미래의 변화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과학자와 디스토피아로 인식하는 인문학자 간 관점 차가 큰 시기였다. 이 무렵 박물관에 첫 발을 내딛은 로봇은, 첨단 과학 기술의 정수를 경험케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이를 마주하는 관람객들의 기술 감수성을 높이고 과학의 진보가 가져올 미래를 묻고 상상하는 촉매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최장수 운영 서비스 로봇으로서 큐아이는 그 역할을 넓혀가며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2020년 5월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실감영상관(Digital Immersive Galleries)’은 박물관 관람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대표 사례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몰입도를 향상시키는 기술에 기반한 융합 콘텐츠’로서 ‘실감콘텐츠’가 제공하는 몰입감과 직관적 대면, 역동적 상호작용은 관람객이 문화유산을 친근하고 편안하게 경험하게 하고 박물관 경험을 다채롭게 확장시켰다.
실감영상관은 전시 관람 동선과 이어지면서도 적절히 독립성을 갖춘 공간에 조성하였다. 실감콘텐츠가 전시품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달래고, 다양하고 유연한 콘텐츠 기획과 효율적 운영이 가능케 하려는 의도였다. 박물관과 문화유산의 장소성과 진정성을 고려한 공간 조성과 콘텐츠 제작 뿐 아니라 이들이 기존 미디어와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임을 브랜딩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실감콘텐츠’라는 용어와 개념이 낯설던 당시, 다양한 관람 동선 상에 놓인 실감콘텐츠 경험을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해외 여행이 불가능하던 시기, '실감영상관으로 떠나는 여행' 컨셉의 스탬프 투어 첼린지를 기획하였다. 전시관 입구의 보안 검색대가 공항 출국장을 연상시키는 점에서 착안해 여권과 탑승권 형태의 첼린지 북, 실감콘텐츠 내 캐릭터를 활용한 뱃지와 스탬프 등을 디자인해 분산된 실감영상관 방문을 유도하고 콘텐츠 경험을 연결해 이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엮어 나갔다. 1회 방문, 재방문, 야간 방문, 가족 방문 등 박물관 방문 패턴을 고려해 보상 체계를 기획하고 참여자의 SNS 업로드를 유도해 구전 효과를 꾀하였다.
개관 초 관람객들은 “옛 것이 고루한 것이 아닌,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던 국립중앙박물관 실감 전시”, “유물이나 작품 본질은 흐려지고 단순 미디어 체험에서 끝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되려 작품 속 작은 요소나 구성을 가지고 재해석하니까 관람객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흥미를 가지고 관람”, “역사책 백번보다 더 효과적”, “뜻밖의 힐링”과 같은 문구로 자신의 감상을 SNS에 공유하였다. 이로써 개별 콘텐츠 경험으로 휘발되지 않고 ‘실감’이라는 통합 경험으로 브랜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비스와 콘텐츠 확산에서 브랜딩의 역할은 적지 않다. 2021년 문을 연 ‘사유의 방’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의 글로벌 브랜드 강화라는 목표를 두고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국보 반가사유상과 밀도 높은 대면을 극대화한 사유의 방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상징 공간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무렵 함께 시작한 제페토 ‘힐링동산(peaceful hill)’ 기획도 같은 목표를 두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대면 만남이 극히 제한되자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한 메타버스 콘텐츠의 소통 가능성이 부상하던 때였다. 2021년 봄 사용자 2억명 이상에 해외 이용자 90%, 10대 80%라는 제페토 플랫폼의 특성에 주목하여 현실의 재현이 아닌 새로운 세계관에 기반한 가상 박물관 구축을 시도하였다. 새로운 경험과 소통에 익숙한 10대와 해외 이용자의 흥미와 감성을 고려한 디자인과 경험 설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타겟 대상을 고려해, 종교적 상징물이나 역사적 예술품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반가사유상의 메시지를 ‘힐링’으로 정하였다. 게임적 요소보다 자유도 높은 경험에 집중해 소셜성(사회적 관계 맺기)를 강화함으로써 장시간 체류와 재방문을 유도키로 했다. 컨셉 전달을 우선시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이나 ‘반가사유상’을 명칭에서 생략하였다. 흥미를 갖게 된다면 정보 검색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반가사유상이 자연스레 노출되는 경관, 동작 제어, 퀘스트 등을 설계해 그에 쉽게 다가가고 특징이 기억될 수 있도록 하였다. 반가사유상의 매력을 진정성 있게 드러내고자 3D 스캔에 기반한 고품질 애셋도 제작하였다. 그러나 모바일 플랫폼 특성 상 데이터를 경량화하면서도 시각적 완성도를 유지시키고, 플랫폼 이용자들의 감수성을 고려해 톤앤 매너를 조율하는 것은 또다른 과제였다.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굿즈를 힐링동산 내 아이템으로 활용해 브랜딩 분야 간의 연결성도 강화하였다. 마침내 2021년 10월 출시된 ‘힐링동산’은 공개 4일간 95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93% 이상이 해외 이용자로 집계되었다. 이후 재방문율과 평균 체류 시간이 높다는 특징을 보이며 꾸준히 방문자가 증가하였으며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현재까지(‘24.7월 초 기준 약2520만명)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소통에 기반한 자발적 콘텐츠 제작과 확산의 경험 공간을 창출한 힐링동산은 진정성 있는 기획 뿐 아니라 명확한 타켓 설정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였다.
타겟층을 명확히 한 좋은 사례로 ‘마음 복원소’를 들 수 있다. ‘다친 마음에 박물관이 위로를 건넨다’는 컨셉의 온라인 콘텐츠로 박물관이 오래되어 낡고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여 전시하듯 마음을 치유하고 되살리는 곳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20대가 방문하고 싶은 박물관’을 목표로 TBWA KOREA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 ‘주니어보드’ 학생 15명이 기획에 참여하였다.
‘마음 복원소’는 숱한 일상 속 고민에 지치고 다친 나의 마음 상태를 진단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진로, 취업, 사랑, 인간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눅눅하고’ ‘구겨지고’ ‘찌들었던’ 나의 마음을 향한 위로의 말이 박물관 속 유물이나 방문지 추천과 함께 건네진다. <깨진 단면의 쓰임새를 읽어봐요. 곧 알아차릴 거예요. 이유 있는 부서짐도 있다는, 1만 년 묵은 깨달음을. (구석기실, 찍개)>, <깨졌죠, 그래도 아름답죠. 깨지지 않는 마음이 세상에 어딨어요. (가야실, 유리잔)>, <몸 챙길 시간이 없었어. 결국엔 이 꼴이 됐지. 몸… 소중한 거더라? (불교조각실, 부처(불두))>, <모양이 좀 특이하면 어때. 나는 내가 나라서 좋아.(고려 1실,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 등과 같이 내게 말 걸어오는 박물관 속 유물은 엄숙한 문화유산이 아닌 내 맘을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MZ 세대가 스스로의 고민과 감성으로 선택한 추천 대상과 메시지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볍지만 마음에 담긴다. 이들이 던지는 재치있는 위로는 세대를 넘어 힘있는 공감을 자아낸다
나아가, 2023년 9월 개관한 국립주앙박물관의 '공간 오감(Sensory learning Space)'은 시각장애인의 감각 경험과 행동 특성을 고려해 기획한 전시 학습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시각 정보가 제한된 채로 ‘여기, 우리, 반가사유상’이라는 주제의 감각 활동이 차례로 이어진다. 오감 체험을 특징으로 하는 활동 대개가 여러 대상과 주제를 병렬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곳에서는 구조화된 여덟 단계 감각 활동이 점진적으로 통합되는 경험의 서사가 펼쳐진다. 전체에서 부분, 외형에서 내부로 심화해 가는 촉각 경험에서는 물성을 가진 실체로 반가사유상을 이루는 형태와 재질 등의 조형적 특성과 아름다움, 역사적 의미를 단계적으로 감상한다. 두 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얻어 특별히 제작한 향기, 저시력자를 고려해 제작한 영상과 멀티 채널 입체 음향 시스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거쳐 실제와 거의 같은 크기와 재질로 만들어진 두 반가사유상과 대면하는 단계는 앞서의 모든 감상 활동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지금껏 각자 느끼고 이해한 반가사유상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단계에서는 최신 스마트 보조공학기기를 도입해 실시간 상호작용과 자기표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주요 구간별 바닥 마감재의 재질을 달리해 주제와 단계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개인화된 체험 지원을 위해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을 특별히 설계하였다. 공간 오감의 오디오 가이드는 현장 지정 표식과 연계하여 각자의 체험 단계와 이동 속도에 따라 구간별로 직접 재생하는 방식이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해독률이 높지 않고 촉각 체험만으로는 느낌 위주의 제한된 경험만이 가능하다는 점, 기존 대부분의 음성 안내가 한 방향 정보 전달 위주였다는 점에서, 촉각 활동과 함께 질문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유도해 감각 경험과 인지 활동이 통합되어 감상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감상 활동과 이동 안내가 통합된 섬세한 시나리오를 베리어 프리 작가와 협업해 완성하고, 여러 차례 현장 시뮬레이션을 거쳐 분량과 속도를 조정하고 직관적 UI/UX와 원격 통합 컨트롤 시스템이 참여자의 활동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간 오감은 시각장애인에게도 즐거운 박물관 경험을 제공하자는 목표를 두고 시작하였으나 장애 여부,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이들이 밀도 높은 다감각 활동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 플랫폼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콘텐츠와 플랫폼 경험의 기획과 운영에 이르는 각 단계에서 명확하게 설정한 이용자의 경험 세계를 섬세히 이해하고 최적화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참여와 통합적 브랜딩은 확산과 지속의 가치를 더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계속)
☞ 자세한 내용은 내용바로가기 또는 첨부파일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지식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