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고서
바이오 정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자료 제공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35 미래사회 - “DNA기록기· 분자레코딩 기술” 편]
제1화 “그들만의 1000일 기념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에 발표한
'2019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 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4월 22일은 강현과 권하선의 이른바 ‘1000일 기념일’ 이었다. 사귀어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니.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커져가는 것과 비례해서 둘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큰둥했다. 뭘 이야기해도 상대의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고, 어떤 행동을 해도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다. 오래된 연인이란 게 보통 그런 식이다.
하선은 뭔가 숫자를 세는 것을 좋아했다. 기념일도 제법 충실하게 챙겼다. 몇 달 전부터 1000일 기념일은 챙겨야 한다고 복선을 깔아왔던 것도 그녀다. 현은 하선이 거창하게 뭔가 특별한 행사를 바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 바빴으니까. 하지만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나란히 퇴근해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해요. 오늘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어제까진 끝내 보려고 했는데.”“오늘은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저한텐 인생이 걸려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서. 자기가 보기엔 별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난 이걸 오늘 안에 꼭 끝내고 싶어요.”
“굳이 오늘 꼭? 제출 마감이 있는 서류나 발표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미안해요. 응?”
알았다고 말하며 혼자 사무실을 나서면서도 현은 기분이 조금 불편했다. 연구실 문을 빠져 나오며 하선이 들으라는 듯 안경 옆에 붙은 작은 터치센서를 누르며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집으로 간다. 차를 준비해 줘.”
3분 정도를 걸어 연구소 정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서자 인공지능(AI)이 호출한 자율주행차 한 대가 유리창 위로 ‘103683’이라는 숫자를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의 주민등록 식별 번호의 일부다. 차 문을 열고 탑승하자 차는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지만 조금도 길이 막히지는 않았다. 도로에 신호등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차량마다 신호등이 따로 달려있다. 모든 차량마다 원격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교차로를 통과할 순서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거리에서 사거리를 보고 있으면 모든 차량이 무질서하게 교차로를 그대로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옛날 말. 차량 내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다른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날은 한 달에 많아도 서너 번에 불과했다. 경찰차나 앰뷸런스 등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만 하는 특수임무 차량이 지나가는 경우다. 약 1년 전부터 전국 서비스를 시작한 이 시스템 덕분에 스포츠 목적이 아닌 한 차량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대부분은 자율주행차를 공유서비스로 이용한다. 한국의 성공사례를 보며 미국, 일본, 유럽 등 각국에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에 이런 교통체증 없는 세상을 만든 건 현이었다. 그는 창 밖을 보면서 문득 3~4년 전, 이 교통 시스템의 실용화 작업에 자신과 하선이 나란히 참가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차는 10년 전부터 이미 완전히 실용화 됐지만 걸림돌은 교통신호 시스템이었다. 자동차에 통신 기능을 얹어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각각의 자동차에 정확한 교통신호를 0.1초도 틀리지 않게 제어하려면 도시 중앙에 설치한 교통 통제용 컴퓨터에 걸리는 부하가 상상을 초월했다.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모든 교통 상황을 예측하고 완전히 통제하긴 불가능해 보였다.
시스템 기획과정에서 현과 하선이 머리를 맞대 새롭게 들고 들어간 아이디어는 ‘DNA기록기술’을 도입하자는 거였다. 생명체의 유전자기록 코드인 DNA에 인공적인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 처음 이 기술을 실험실에서 구현해 낸 건 2000년 대 초반. 자동화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이 2019년이다. 이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지금은 대용량 컴퓨터 저장장치를 제작할 때 여러 분야에서 속속 쓰이고 있다. 1g의 유전물질에 10억 GB(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최근 수년 사이에 급격히 각광 받고 있었다.
현과 하선은 이 기술을 끌고 와 교통통제 시스템의 데이터 저장시스템에 적용한 일등 공신이었다. 현은 도로교통시스템에 꼭 맞는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전용 DNA구조를 고안해냈고, 하선은 이 DNA기록시스템을 컴퓨터 시스템에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 둘이 없었다면 세상은 아직도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감정이 직장동료 이상으로 발전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둘은 같은 실험실에서 밤을 새고, 함께 같은 소파에 쓰러져 쪽잠을 잤다.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마치려다 보니,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다 보니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힘겹게 지내던 시절, 서로에게 누구보다도 위안이 됐던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싹트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하선이도 그때 이 연구 하면서 정말 고생 많았었는데.” 현은 하선이 생각나자 조금 전 내심 섭섭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오늘 같은 날 뭐가 바쁘다는 거야.”
집에 들어온 현은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간단한 음식을 챙겨 먹고 잠시 TV보다가 결국 다시 일거리를 찾았다. 노트북 컴퓨터엔 그가 과거에 설계했던 기록저장용 DNA구조의 설계도가 들어있었다. 최근 현은 짬이 나는 대로 이 DNA 구조를 다시 새롭게 다듬을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예상대로만 완성된다면 지금 실용화돼 있는 DNA기록 시스템의 효율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몰랐다.
“아무래도 정보를 어떻게 넣고 꺼내야 하는지, 이 부분은 내 머리로 한계가 있단 말이야. ICT분야는 영….” 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두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을까.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키자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지각 있는 행동은 잠을 잘 준비를 하는 것 이외에 없다는 사실을 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를 풀 곳을 찾고 있는 듯 계속 설계도를 노려보고 또 노려보고 있었다.
11시 30분이 넘어갈 무렵. 현의 휴대단말기로 화상통화 요청이 들어왔다.
‘와우! 다 했어요. 퇴근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있었다. 하선이었다. 현은 화상통화를 켜고 하선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걸었다.
“아니. 지금 퇴근하는 거야?”
“막상 그러는 자기도 지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하선은 낭랑하게 말했다.
“으…. 응. 그러네.”
“e메일 하나 보냈는데, 혹시 지금 볼 수 있어요?”
현은 대답 없이 노트북 메일함을 뒤졌다. 제목란에 ‘경축. 1000일 기념.’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뭔데 그래?”
“오늘 안에 꼭 끝내서 자기한테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이 일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건데. DNA기록 시스템에 쓸 수 있는 신형 정보 인터페이스예요. 원래는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서 주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버그가 보여서 고치느라고.”
“…….”
“왜 아무 말이 없어요. 고맙다 정도는 해야지. 여기 맞추면 기록저장용 DNA구조를 새로 짜기가 100배는 더 쉬워질 것 같지 않아요?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다구요. 기존 시스템으로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던 뇌세포 전체 시뮬레이션까지 가능해질지도 몰라요. 생명과학분야에도 혁명이....” 하선은 자랑하듯 속사포처럼 말했다.
“하선아. 지금 어디야?” 현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급하게 물었다.
“집에 가는 중. 왜요?”
“지금 갈게. 집 앞에서 보자.”
“응? 조금 있으면 출근인데, 뭐 하러?”
“좀 안아주고 싶어서. 도착하면 잠시만 기다려.” 현은 자율주행차를 부를 수 있는 스마트 안경을 찾아 쓰고 현관문을 급하게 열고 뛰어나갔다.
To be continued..
글 : 전승민(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삽화 : 조진호(NC문화재단)
감수 : 최인성(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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