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고서
바이오 정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자료 제공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35 미래사회 – “역(逆)노화성 운동모방 약물”편]
제4화 “홈오토메이션이 가져온 굶주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에 발표한
'2019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 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휴.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휴일 아침. 식사 전 체중계에 올라가 본 강현은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몸무게가 어느덧 85㎏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현은 자신의 체중에 그리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가 걱정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연인인 권하선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85㎏은 그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현의 한계 체중이다.
현은 저울에서 내려와 아침 식사로 먹을 빵 몇 개를 구우면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있었다. 하선으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뭔가 눈치를 챘는지 초반부터 공격적이었다.
“아침 먹고 있는 거죠? 그 빵 절반은 나중에 먹어요. 너무 많아요.”
“응? 내가 빵을 몇 개나 굽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아침마다 원래 빵 많이 먹잖아요. 크루아상 한 조각에 몇 칼로리인지 몰라요?”
“뭐? 아니 빵 종류는 또 어떻게 알았어?”
현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 눈치가 빠른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모든 일을 손바닥 보듯 꿰뚫어 보고 있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현이 이틀 전 하선과 나란히 퇴근하면서 제과점에 들렀다가 크루아상을 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 바구니 속에는 평소 자주 사던 베이글도, 통밀 식빵도 들어있었다. 영상통화 장치로 토스터 속에 들어있는 빵의 종류까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계 체중까진 아직 여유가 있어. 아침은 좀 챙겨 먹을게.”
오늘따라 하선이 다그치는 기색이 강하자 현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안 넘은 것 맞아요? 체중 몇 ㎏이었는지 정확하게 말해봐요.”
하선은 식탁 앞 홀로그램(입체영상) 디스플레이 너머로 도끼눈을 한 채 현을 보고 있었다. 현은 ‘오늘 아침에 쟀던 체중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현은 키가 큰 편인 데다 타고 난 골격도 굵고 튼튼했다. 겉보기엔 건장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입버릇처럼 ‘과체중은 뼈가 굵어서 그런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운동과 식생활 조절을 소홀히 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생활습관을 알고 있는 하선은 걱정이 적지 않았다. 현은 늘 “대학 시절에 비해 그렇게 체중이 많이 나가지도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하선은 도리어 그 이야기가 위험신호로 들렸다. 이른바 마른 비만. 근육이 빠져나간 만큼 내장지방이 차올라오고 있다는 의미로 여겨져 늘 마음이 답답했다.
“정 걱정되면 오후에 병원에 가볼 테니까. 토요일이지만 예약을 오전에 잘 잡으면….”
“어유. 그 방법은 이야기 안 하면 안 돼요?” 하선은 결국 짜증을 냈다.
“나도 매일 시간 내서 운동하고 싶어. 하지만 실험데이터 체크 할 것이 밀리기 시작하면 뒷감당이 안 된단 말이야.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몇 개인지 알고 있잖아.”
“작은 것부터 하면 되잖아요. 우선 그 크루아상부터 두 개 줄여요.” 하선은 다시 달래듯이 말했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운동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기본이다. 1970년대부터 알려진 상식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명과학자들은 그 뒤에 숨어있는 인체의 비밀까지 풀어내려고 했다. 운동할 때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혈액과 세포 속 성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 성분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차근차근, 몇십 년에 걸쳐 차근차근 밝혀내온 것이다. 이런 노력은 노화나 사고, 질병 등으로 운동을 할 능력을 잃어버려 점점 더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됐다.
관련 연구는 5년 전인 20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체가 운동을 하면 생겨나는 성분, 이른바 ‘운동 인자’를 정량적으로 계측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혈액검사 시약’이 등장한 것이다. 처음엔 개인에게 꼭 맞는 운동치료방법과 강도를 결정하는 데 쓰였지만, 점차 사람들은 그 응용방법에도 눈을 떴다. 관련 분야 연구개발은 물론 관련 기술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도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기술은 알약 형 ‘운동캡슐’의 개발로 이어졌다.
주변에선 ‘운동선수 누가 운동캡슐을 먹고 있다더라. 부쩍 날씬해진 연애인 누군가가 이 캡슐로 효과를 봤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실제로 이 캡슐을 먹으면 운동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HR’이라고 적힌 알약 한 알을 먹으면 두 시간 동안 운동한 효과를 얻는 식이다. 인체 활력이 늘어나고 혈관이 튼튼해지며, 근육 손실마저 막아주니 노인들에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대사량이 늘어나니 체중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의의 처방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었다.
하선은 현이 이런 약에 눈독을 들이는 게 영 못마땅했다. 약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못내 언짢았다. 10여 년 전 완전히 실용화된 ‘먹는 인슐린’만 있으면 당뇨병 환자도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이미 걸린 사람이 약을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선은 생각했다. 반대로 실용주의자인 현의 생각은 하선과 달랐다. 알약 하나로 운동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는데, 체중을 줄이라고 매일 잔소리를 하면서도 병원은 왜 가지 말라고 하는지 하선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아침부터 하선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조금 토라진 현은 욱하는 마음이 동해 결국 혼자 병원을 찾았다. 그는 몇 가지 굵직한 연구에 성공하면서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스타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비만과 관련이 있는 약물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일은 없었다. 어느 병원을 갈까 잠시 고민하다 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 김형진을 찾았다. 간단한 검사를 받고 진료실에 들어서자 형진은 흰 가운을 입고 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 운동캡슐 처방받겠다고 뇌신경외과로 오는 건 너뿐일 거야. 잠깐 앉아봐.”
형진은 그의 의료 정보를 띄워 둔 투명 태블릿 PC의 화면을 휙휙 넘기면서 말했다.
“바쁜데 미안해. 맘 편하게 찾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저번에 몸살로 집 앞 병원에 갔을 때는 현수막이 내 걸렸다고. ‘생명과학자 강현도 믿고 찾는 OO병원’이라고 써 있었어.”
“하하. 진짜야? 걸작인데. 우리도 해 볼까?”
“농담하지 말고. 전화로 잠깐 이야기했던 건 말인데, 그 약 나 먹어도 돼?”
“잠깐만. 음, 신체 활력 수치가…. 안 되겠는데. 넌 아직 이런 약 먹을 단계는 아니야.”
“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도 그 약 먹는다던데?”
“그건 불법이잖아. 몰래 구해서 먹다가 발견되니까 자꾸 뉴스에 나오는 거지.”
“그럼 건강한 사람은 그런 약을 못 먹게 법으로 막아 놓았다는 거야?”
“응. 아마 약이 워낙 좋아서 그런 건 아닐까?”
“약이 좋은데 왜 못 먹게 해?” 현은 의아해서 물었다.
“의료서비스의 형평성 문제겠지 뭐. 내가 봐도 의학적으로 크게 위험하진 않아. 사람 몸속에서도 자연히 생겨나는 성분이니까. 하지만 이런 약이 제한 없이 쓰이면 건강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체력도 껑충 올라간다는 뜻이 되거든. 그럼 정작 몸이 안 좋아서 치료를 받고 겨우 정상인 수준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차별은 해소되지 않을 수 있잖아.”
“아….”
“그래서, 안됐지만 이 약은 못 드십니다. 환자님. 대신 관련 기술을 응용해서 조금 도움을 드릴 수는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진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어떤 도움?”
“약을 먹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 전 단계에 시행하는 성분 진단을 이용하는 건 가능해. 몸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하면 식단조절이나 하루 운동량을 계획할 때 도움이 될 거야.”
“어휴. 결국은 굶고 운동하라는 이야기구나.”
“당연하지. 그것보다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없어.”
현은 아쉽게 병원에서 나와 자율주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시트에 몸을 기대고 있을 때 하선의 화상통화가 들어왔다.
“병원에서 뭐라던가요? 그 약 먹으래요?”
“아니. 나는 아직 먹으면 안 된다고…. 잠깐만. 내가 오늘 병원에 간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현은 깜짝 놀라 자동차 시트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지난 주말에 자기가 홈오토메이션 시스템 업그레이드하면서 나한테 다 맡겼었잖아요. 비밀번호 알려준 것도 자기였고, 기억 안 나요?”
“아. 가사관리용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기한테….”
“아까 토라져서 나갔길래 걱정했는데 마침 병원 갔던 의무기록도 올라와서 봤어요. 아침엔 토스터 설정이랑 스마트 체중계 기록을 봤을 뿐이고.”
“계속 그렇게 감시할 생각이야?”
“설마. 그저 당분간 주방이랑 아파트 단지의 운동센터 연동 기록만 보고 싶을 뿐이에요. 83㎏, 아니 82㎏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 비밀번호 바꾸면 안돼요. 알았죠?”
“휴. 알았어요. 알았다고. 살 빼면 될 것 아니야.”
현은 아침 식사를 조금밖에 하지 못해 허기진 배에 한 손을 올려둔 채 조금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To be continued..
글 : 전승민(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삽화 : 조진호(NC문화재단)
감수 : 이광표(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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