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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년 생명과학 미래사회- “공간 오믹스 기반 단일세포 분석기술” 편]
제3화 “갑갑한 마음”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알겠습니다. 예. 예.”
국가생명정보기술원 소속 김수민 연구원은 요즘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누가 뭐라고 이야기해도 일단 알았다고 대답해 놓고, 주위 눈치를 보며 수동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첫 출근 이후부터 계속해서 사고(?)를 치다 보니 주변의 보는 눈이 그리 곱지 않은 탓이다. 주눅이 가득 든 수민은 급기야 생각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자포자기한 마음에 수민은 ‘기계처럼 일만 하면 돼, 난 의견이 같은 게 없는 거야.’라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계속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수민을 보고 “얌전해져서 좋다”거나 “겨우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민을 보며 연구단장 강현 박사는 한숨은 한층 더 깊어져 갔다. 겨우 찾아낸 재능 있어 보이는 후배의 의욕이 꺾여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은 탓이다.
실무 연구자 때와는 다르게 현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아득하게 많았다. 혼자 자기 연구만 잘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단장직은 그에게 한없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빨리 누군가 이 답답한 단장직을 가지고 가 버려서 자신은 하선과 나란히 하고 싶은 연구만 하고 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잠시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까지 전부 꺼 버린 현은 멍하니 턱에 손을 괴고 앉아있었다. 잠시 그러고 있었을까. 때마침 화상 전화가 들어왔다. 현은 디스플레이를 켜 누군지 확인해 볼 생각도 않고 한 손으로 스마트 안경을 집어 얼굴에 쓰면서 답했다. “응. 왜?”
“예? 오랜만에 전화 드렸더니 너무하시네요. 인사 정도는 좀 해 주세요.”
“아. 한 박사군. 미안해. 아내인 줄 알았어.”
현의 직통 영상통화 번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선을 비롯해 가족 몇 사람을 제외하면, 그에게 개인번호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중국 의료유한공사 소속 한휘경(중국명 한후이징) 박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제가 전화할 때면 꼭 권 박사님이랑 착각하시네요?” 휘경은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자꾸 그렇게 놀리면 번호 바꾸고 안 가르쳐준다.” 현이 투덜거렸다.
현이 휘경과 알고 지낸 지도 몇 년째. 여러 일을 함께 겪은 두 사람은 이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알았어요. 알았어. 하고 싶었던 말이 뭐냐 하면요, 우리 회사에서 화장품도 연구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시다시피 ‘세포재생 화장품’이 세계적으로 인기거든요. 옛날처럼 보습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재생 효과가 있어요.”
“응응. 들어봤어. 그런데 그건 왜 나한테?”
“이거 극비인데, 다른데 이야기하면 절대 안 돼요. 사실 세포재생 화장품들은 효과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세포 노화 등이 원인이면 괜찮은데, 피부 속에 숨어있는 세포 몇 개가 계속 문제를 일으킬 때면 칼을 대기도 뭐하고 주사를 놓기도 뭐하고 참 애매하거든요. 이 원인을 찾아내느라고 사실 고생했다고요. 인공지능으로도 안 나와서 제가 며칠 밤이고 눈으로…”
휘경은 한 번 전화하면 현에게 자기가 열심히 했던 일을 속사포처럼 자랑하며 몇 분이고 떠들고는 했다. 이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힘들어진 현은 얼른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 공간 오믹스 말하는 거군. 암이나 심장 세포 치료할 때 2030년부터 많이 쓰던 걸 미용 쪽에서 쓰겠다는 거지?”
“맞아요. 그걸로 약물이 정확한 위치로 추적해 들어가게 만들려는 거예요. 이번에 맞춤형 화장품으로 만들어서 VIP고객용으로 판매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문제 세포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정해 둘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응. 지정은 할 수 있겠지만, 그 단계에서 화장품으로 뭘 할 수 있는 거야? 좀 이상해.”
“이쪽은 의료랑 달라요. 위험한 질환을 일으키는 것도 아닌데 반드시 어떻게 치료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바르고 있는 동안은 그 특정 세포의 트러블을 막을 정도면 충분해요.”
“참. 나도 이런 연구하고 있지만 세상 정말 좋아졌다.”
“그쵸?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요. 그….”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내가 직접 하긴 힘들어. 나 단장이라고.”
“아. 그럼 어떻게 해죠. 유전자 전문가가 꼭 한 명 있으면 했는데.”
“세포 속 유전자 확인하고, 하는 정도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해.”
“아. 정말요?”
“대신 나도 조건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현은 뭔가 생각난 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
[사령]
명: 수습연구원 김수민.
파견근무. 근무지 중국.
업무: 피부 속 단일세포 분석기술 국제협력연구 지원.
기간: 프로젝트 종료 시까지. 2개월 이상 예상.
시작일: X월 X일부터.
‘아니 이젠 날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 다음 날 아침. 출근 후 연구단 공고란에 내 걸린 사령을 본 수민은 어이가 없어져 그 즉시 단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날따라 또 늦잠을 자고, 그래서 도보로 15분 거리를 5분 만에 뛰어온 수민의 이마는 땀으로 살짝 젖어있었다. 단장실 문을 벼락같이 열어젖힌 수민은 숨을 헐떡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헉헉. 아니, 단장님 정말 왜 그러세요. 제가 그렇게 미우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내가 김수민 박사를 왜 미워해.” 아침 회의 준비를 하려고 홀로그램 화면을 넘기던 현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한테 한 마디라도 물어봐 주셨어요? 왜 이런 일을 제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시는 건데요?”
화가 나서 떠드는 수민을 보고 현은 ‘이 친구가 조금은 기운을 차렸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좋아. 일단 앉아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살펴본 현은 곧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따라 손에 들고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았다. 수민이 머뭇머뭇 뒤따라 자리에 앉자 손에든 물잔을 내밀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민 씨를 보면 종을 잡을 수가 없어요.”
“예? 그게 무슨 뜻인가요?” 현에게 받은 물잔의 절반을 한꺼번에 비워버리고선, 잔뜩 당겨 올라갔던 목울대를 다시 펴며 조금 잠긴 듯한 목소리로 수민이 대답했다.
“종을 잡기가 어려워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때는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어떤 때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데 어떤 때는 편리에 따라 마구 일을 처리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매우 공손한데 어떤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은 일을 벌이고는 해요.”
“…….”
“왜 그런 것 같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겠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사회상규나 규정, 원활한 직장인의 태도 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일하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체념했다가, 반항했다가, 이해해보려고 했다가.”
“…….”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민 씨에 대해 기대가 아주 커요. 중요한 분야를 공부한 적이 있고, 사고방식도 유연합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도 있습니다.”
현은 국내 유전자 교정 및 설계 분야 일인자로 꼽혔다. 현을 모셔가기 위해 고액의 연봉과 막대한 연구비를 제시하며 줄을 서고 있는 타국 연구기관의 숫자만 해도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현이 신입 연구원을 데리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애초에 현의 양해가 없었다면, 수민이 단장실을 이렇게 수시로 박차고 들어오는 일이 용납될 리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수민은 단장의 이런 말을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아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몇 년 전인가? 수민 씨랑 성격적으로도 비슷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제 속을 꽤 썩였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연구하지만, 한국 사람이고, 지금은 어엿한 연구팀장으로 성장해 국제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멋진 연구자가 됐어요.”
“예. 예.”
“그 친구가 마침 유전자 분석 분야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제가 수민 씨를 추천한 겁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 본래 몇 년 이상 경력이 쌓여 독자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아요.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취소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수민은 계속 답답했다. 뭔가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 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이해가 가지 않으니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수민은 다시 현에게 물었다.
“저… 말씀대로라면 굉장히 감사한 일인데요, 그럼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예요? 저는 이제 출근한 지 3개월 되어가는 일개 직원인데요.”
여기까지 듣고 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배잖아요. 선배가 후배 돕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
“회의 늦겠습니다.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준비하세요. 내려가서 봅시다.”
“네……. 저기, 고맙습니다.”
수민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실수하는 것 아냐 이거.” 현은 뒤통수를 긁으며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김정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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