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보고서
바이오 정보를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자료 제공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년 생명과학 미래사회- “조직 내 노화세포 제거 기술” 편]
제4화 “혼자 할 수 있는 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갑작스럽게 중국 파견근무 지시를 받은 국가생명정보기술원 김수민 연구원. 그녀는 어느 날 오후 중국 상하이 푸둥 공항에 내렸다. 중국 의료유한공사에서 파견근무를 하기로 한 탓이다. 며칠 사이에 부리나케 짐을 싸 들고 온 탓에 짐은 굉장히 단출했다. 전자서류 한 묶음, 정보 단말기 하나, 얼굴에 쓴 스마트 안경 하나, 휴대용 키보드 하나. 그리고 당장 갈아입을 옷가지 몇 개와 간단한 화장품 등이 전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같은 아시아 지역에선 한국에서 보낸 국제 택배를 하루면 받을 수 있었으니까. 2020년, 그리고 2021년 두 해 동안 지구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코로나19(Covid19) 펜데믹 이후, 전 세계 항공물류 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이후 2030년대 초까지 약 10여 년간은 세계적으로 ‘언텍트’ 문화가 크게 불거졌다. 사람들은 서로 직접 만나지 않는 대신,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으며 교류하곤 했고, 그 수요는 기술의 비약적 발견을 이끌어냈다. 다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문제마저 사라져 결국 사람들의 생활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 불편한 점만 빼면.
그 불편한 점은 결국 푸둥 공항에서 수민의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출입국 수속에 문제가 생겨 공항 내부를 몇 번이나 왕복해서 뛰어다녔다. 사전 준비를 소홀히 한 탓에 검역장에 온 다음에야 ‘최신 감염증 예방 내역과 진료 정보’를 전자 여권에 업데이트해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민한 개인정보라 본인과 의료기관이 동시에 승인하지 않으면 자동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결국 수민은 상하이에 도착한 지 서너 시간 만에 겨우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했다. 겨우 자율주행 택시를 잡아타고 미리 입력한 ‘의료유한공사 상하이 연구소’ 달려가기 시작한 다음에야 그녀는 뒷좌석 의자에 등을 파묻으며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하. 공항에 국제 의료연결 시스템이 있었길래 망정이지, 꼼짝없이 돌아갈 뻔했네. 도대체 난 왜 이리 덜렁거리는 거지.”
수민이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민은 잠시 후 주섬주섬 전화번호를 확인해 걸기 시작했다. 중국 의료유한공사 한휘경 팀장에게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퇴근시간은 코 앞이라 내일 연구소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공항에서 시간을 잡아먹은 그녀는 결국 중국근무 첫날부터 결근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
그날 밤 수민은 연구소 앞 호텔에서 잠을 잤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중국 의료유한공사 상하이 연구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연구소는 미려하고 기능적으로 설계돼 있었고, 건물이나 집기도 모두 새것이었다. 연구진들은 중국인들이 대다수였지만 의외로 여러 나라 사람이 모여 있었고 분위기도 밝았다. 하지만 도착 첫날부터 사고를 친 격이라 수민은 잔뜩 얼어있었다. 그녀가 조금 주늑이 들어 있다는 걸 눈치챈 휘경은 만나자 마자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어유. 공항에서 고생하셨다면서요. 어제는 잘 잤나요?”
‘아. 엄청 미인이시네요. 놀랐습니다.’ 휘경을 처음 본 수민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잊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만만치 않으신 분이 왜 그래요. 여자끼리.” 휘경이 웃으며 반색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미리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희 연구소는 의료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저희 팀은 화장품 분야를 맡습니다. 새로 개발하기로 한 화장품은 피부 속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세포를 찾아내고 위치를 특정해 약효를 전달하고 문제를 방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질병 등 치료에 보편화 돼 있는 ‘공간오믹스’ 기술을 적용하려고….”
“저, 그런데요….”
한국에선 평소 주눅이 들어 의견을 잘 꺼내지 못하던 수민은 친절한 휘경의 태도에 호감이 간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도 비행기 타고 오면서 몇 가지 살펴봤는데요, 그거 그냥 노화세포 제거기술(Senolytics) 기술에서 필수적으로 쓰던 ‘바이오마커’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걸….”
“어차피 피부트러블을 막는 화장품이잖아요?”
“그… 그렇죠.”
수민의 말을 듣던 휘경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이 문제를 그렇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화세포 제거기술은 인체의 노화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이다. 2030년부터 관련 기술을 적용한 치료제가 나오기 시작해 2040년인 현재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었다. 관절염, 추간판탈출증, 근골격계 질환 등 노화가 오면서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거나 완화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물론 이 방법으로 제품을 개발하려 해도 넘어야 할 숙제는 많이 생길 터였다. 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려면 수민의 방식이 훨씬 빠를 것 같이 생각됐다.
“대단해요. 이 문제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가 찾아야 할 세포는 노화세포가 아니라 다른 문제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세포 종류거든요. 일반 노화세포는 이미 약이 나와있고….”
“표적인자의 조합을 바꿔주면 아마 가능할 거예요. 강현 단장님만큼은 못 하겠지만 저라도 도움이 되신다면 열심히 만들어볼게요.”
오랜만에 칭찬을 들은 수민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와. 왜 강 단장님이 김수민 박사님을 이리 보내줬는지 알았네요. 좋아요. 갑작스럽지만 오후에 개발팀 회의를 합시다. 박사님도 꼭 들어와 주세요. 지금 이야기하신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시면 길이 보일 것 같아요.”
휘경은 기분이 좋아져서 말하는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다.
한국에선 구박만 받다가 갑자기 큰 기대를 받게 된 수민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를 몰라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자신감과 일할 의욕이 솟아오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
그날 저녁. 휘경은 한국의 현에게 전화를 걸어 재능 넘치는 친구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의 반응은 조금 뜻밖이었다.
“글쎄.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조금 더 두고 봐 주면 어때?”
“왜요? 아이디어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샘솟듯 나와요. 몇 년 전 강 단장님 일하는 것 보는 것 같더라니까요.”
“조금 두고 보자고. 내가 미안할 일까지는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무슨 뜻이에요?”
“똑똑한 친구인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아직 뭔가 결여돼 있거든. 그걸 거기서 배워줬으면 했어.”
“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휘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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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온 지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수민의 연구는 생각외로 진척이 없었다.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에서 스스로 의견을 이야기했고,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이디어를 실현할 폭넓은 지식과 분석력, 경험 등이 모두 부족했다. 자신있게 나섰는데도 이것저것 주위에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었다. 혼자 모든 일을 다 처리하려다 보니 일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결국 자신이 맡아야 할 영역이 아닌 업무까지 감당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점점 더 일정이 꼬여 계획대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 이거 미치겠네. 지금 와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고.”
수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수민은 이제 실험에 들이는 시간보다 연구 일정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실험 자체보다 일정관리에 더 주력해야 하는 상황. 주객이 전도된 최악의 상황에 이르자 자신있게 “내가 할 수 있다”고 나섰던 몇 달 전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체념한 듯 홀로그램 영상 쳐다보고 있던 수민 앞으로 음성통화 하나가 요청이 날아들었다.
“잘 지내시나? 단장님이 오늘쯤 연락해 보라고 하시더군. 지금 진행 상황은 어때?” 한국에서 그녀의 ‘사수’ 역할을 맡고 있는 최영일 박사였다.
「네. 선배님. 안녕하세요. 전 잘 지내지 못해요.」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나.」
「그게 어떻게 됐냐 하면요. 으앙.」
최 박사의 연락을 받고 수민은 갑자기 어리광 같은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 그동안 선배들이 왜 뭔가 해 본다고 하면 걱정부터 했는지,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최 박사는 수민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조용히 수화기를 들고 기다렸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수민은 울음을 멈추고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최 박사에게 그간 있던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최 박사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요?」
「당장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선배님들이 계실 때는 시킨 것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고…. 일이 한두 개일 때는 괜찮았는데 서너 개가 겹치니 머릿속이 하얗고요….」
「알았어요. 알았어. 단말기 열어 줘요. 진행 중인 일정이랑 프로젝트 파일부터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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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일은 두 사람이 원격으로 협력하며 진행하게 됐다. 수민이 상하이 연구소에서 실험을 담당하고 보고하면, 최 박사는 업무의 경중을 파악해 그날 우선해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주고, 주의할 점도 알려주곤 했다. 최 박사의 조언은 놀라운 것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달하던 수민은 업무에 자신을 찾았고, 연구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갔다.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났을까. 수민은 마침내 바이오마커 기술을 이용해 피부 세포 속 각종 병든 세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표적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 노화세포 제거기술에 사용하던 마커에서 몇 가지 유전자를 바꿔 넣은 정도였지만 기능 전체를 이해하고 시행해야 하는 일이라 적잖은 시간을 들였다. 절대적인 업무량은 수민이 당연히 최 박사와 비교할 수 없이 많았겠지만, 수민은 이번 일은 최 박사 없이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났을까, 수민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수민은 그간 원격으로 일을 도와줬던 최 박사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녀와야 한다며 부산을 피우고 있었다. 한국의 같은 실험실 연구원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휘경은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현에게 영상통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삑 소리가 난 후, 현은 휘경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대뜸 사과부터 했다.
“수민 씨 근무 오늘까지지? 그간 미안했어. 골치 많이 아팠지?”
“아니에요. 같이 일하면서 재미있었어요. 결과가 좋았으니 저는 만족해요.” 휘경이 개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중간엔 엄청 걱정했었다고요. 갑자기 자기 방에 두문불출하지를 않나, 어쩌다 봐도 사람은 어두워지고, 혼자 다 끌어안고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고. 분명히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컸을 거예요.”
“그만할 때 자주 하는 실수잖아. 경험이 없으면 판단이 어려워. 판단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가 없지. 간단한 건데 다들 잘 모르거든.”
“아무튼, 이번에 도와주신 건 맞는데, 그래도 저한테 신세 진 거예요.”
“알았다고. 내가 다음에 두 배로 갚을게.” 현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 이미옥(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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