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인

“이미 내과 전공의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기초의학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련때문에 미
생물학 교실에서 석사를 했던 거죠.”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김미경 교수는 이때 실험이라는 것이 큰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결과들을
집대성해야 하는 것이고, 조그만 결과 하나가 얼마나 많은 노력의 결실인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를 깨
닫게 되었다고 한다. 기초학문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임상에 접목할 과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던
중, 김 교수는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던 호산구 분리
를 섭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극을 받은 호산구의 격렬한 모습과 새로 개발중인 약제가 그 모습을 다스
리는 것을 보고 느꼈던 감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 생물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DNA에 관한 책과 대학 원서를 구입하여 몇주에 걸쳐 탐독하
면서 '정말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DNA의 구조를 거의 규명하고도 자신의 아집에 빠져 놓쳐
버린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여성 과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아마 누군가 자연과학이라는 학문
에 관해 심도 있게 조언을 해주는 분이 계셨다면, 의학이 아닌 순수 과학도의 길로 갔을지도 몰라요.

김 교수는 당시나 지금이나 성적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지라 의과대학을 택하였
고, 의과대학에 가면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제임스 D. 왓슨처럼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한
다. 의과대학 본과 1학년때는 대학 동기 한명과 함께 해부학 교실에서 실험을 하여 '갑상선 호르몬이 생식
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연구로 전국 대학생 자연과학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할 정도로 이러한
생각은 대학진학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제 뜻대로 면역학을 전공하지는 못했지만 임상을 하더라도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 전공
하고 있는 알레르기를 전공하게 된 겁니다. 비록 지금은 어린 나이에 그토록 열망하던 순수 과학자의 길
은 아니지만, 임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맛보지 못하는 임상의로서의 묘미가 있어요. 임상을 경험하였
기에 가질수 있었던 의문이나 치료의 새로운 방향 등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게 된 것을 큰 축복이라 여기고
있어요.

요즘, 김 교수의 주된 관심은 천식의 치료제 개발과 이들의 병인에 관한 연구다. 그는 현재 한국과학기술
원, 충북대학교 약학대학, 충남대학교 약학대학, 영남대학교 약학대학과 함께 새로운 항천식약제 개발프로
젝트를 3년째 진행하고 있고, 동물실험 결과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기도 했다. 대기 오염이 천식의 유병률
을 증가시키는 이유를 최근 동물 실험을 통해 일부 규명한 것이다. 또, 수지상 세포를 이용한 새로운 천
식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과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의과대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기초 의
학 교실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면 대개는 말린다고 한다. 과학자의 길이 임상의가 되는 것보다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엄청난 의지와 차가운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내가 실험하고자 하는 대상을 늘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를 해주죠. 저같은 경우는 연구하
고 있는 호산구를 늘 친구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끔 학회에서 발표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면 나도 모
르게 '이 친구들'이라고 해요.

덕분에 가끔 주위에서 '그 친구들 잘 있지?' 하는 안부 인사를 종종 듣기도 합니다. 그는 이와함께 지치
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습관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
다. 2년전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리가 좋지 않아 시작한 요가는 지금 그에게 취미이기 이전에 수양의 한
방편이다.


(과학과 기술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