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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동향

생체시계

  • 등록일2002-08-01
  • 조회수15316
  • 분류기술동향
제 160 호

생 체 시 계


 

최영식, 김경진 / 서울대 생명과학부


2020년 어느 날 오후

김과장은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 잠시 들러 지난 주말에 했던 유전자검사 결과를 받아 보았다. 진단서에는 자신이 아직도 과장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이렇게 적혀있다.

피리어드(period) 유전자의 점돌연변이로 인해 낮과 밤이 바뀌는 증상. 장기적 치료가 요구됨

직장 의료보험에 유전자진단 항목이 추가된 올해 김과장과 같은 진단 결과가 빈번하다는 의사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의사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100룩스의 빛을 십초 간격으로 오분간 몸에 조사하세요. 점심식사 후에는 여기적힌 처방전대로 약을 드시고 저녁 8시가 넘으면 꼭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세요. 라며 자세한 처방을 알려주었다. 진단 결과 는 직장 의료보험 조합에 통보되었고, 회사 인사위원회는 김과장의 업무 부서건으로 회의를 열었다.

 

김올뺌 과장귀하:

당신의 체질과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 부서를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 영등포 창고 영업소 야간 근로 ----

2020년 9월 15일부터 출근

유전자 검사를 받기 전부터 염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김과장은 사무실을 바람처럼 빠져 나와 큰 벽시계가 걸린 회사를 걸어나갔다.

위 내용은 최근 사람 생체시계 유전자인 period2와 period3가 수면장애와 관련된 유전자라는 사실이 보고되었던 점을 토대로 한 가상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김과장의 일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리듬

미동부 해안에서 세시간의 시간 차이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가면 점심때는 배가 부르다가 오후 3시가 되면 배가 고파지고 저녁 7시에 벌써 졸음이 쏟아진다 (jet-lag).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시 잠이 들 수가 없게 되면 시차를 극복해 줄 뭔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같이 대륙 간 여행이 빈번한 경우 외에도 불면증이나 계절성 우울증상과 같이 시간과 인간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생물학적 리듬 (biological rhythm)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는 생명체의 다양한 생리적, 행동학적 변화를 총칭하며 생체리듬 혹은 바이오리듬이라고 한다. 생체시계 (biological clock)는 일주기성과 같은 생체리듬의 주기성을 나타내는 생체 내에 내재되어 있는 생물학적 시계를 의미한다. 생체시계의 현대적 개념을 요약한다면, 1) 생체시계는 자발적으로 작동하고, 2) 유전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3) 밝음과 어두움과 같은 명암주기나 온도와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재설정 (entrainment)된다.

시차적응은 말할 것도 없으며 수면과 각성주기의 이상으로 인한 불면증, 야간 작업시 근로자의 심리, 사회학적 문제 등 생체시계의 중요성은 질병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 중 어느 시기에 약물을 투여하는가에 따라 그 효과도 크게 달라지고 약물의 작용 메커니즘도 영향을 받는다. 천식은 주로 밤에 그 증상이 심해지므로 천식을 막기 위한 약물은 밤에 고농도로 투여하고 낮동안에는 적은 양만을 투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따라서 일주기 리듬에 맞추어 약물을 투여하는 바이오리듬치료법 (chronotherapy)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일주기 리듬

일주기 리듬 (circadian rhythm)에 대해서 알아보기 앞서, 바이오리듬과 관련된 몇몇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아직도 생체시계의 분자적 조절네트웍은 잘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이와 같은 시계를 물리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진동자 (oscillator), 진동발진기 (pulse generator) 혹은 맥동조절자 (pacemaker) 등으로 부른다. 생체시계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데 (free-running), 이는 외부환경의 영향(예, 낮-밤의 일주기)과는 전혀 관계없이 생체에 내재되어 있는 생체시계가 자발적으로 주기성을 가지고 되풀이되는 리듬 (self-sustained rhythm)을 의미한다.

 

환경으로부터 유래하는 시간설정에 영향을 주는 신호나 설정인자를 타임큐 (time cue)라고 한다. 태양빛, 온도 등은 생물시계를 재설정하는 중요한 타임큐이다. 생체시계에 영향을 미쳐 시간을 설정하도록 하는 것 (time giver)을 자이트게버 (Zeitgeber)라고도 한다. 외부 환경 타임규에 의해서 일주기가 앞당겨지거나 지연되기도 하는데 이것을 주기의 위상이동 (phase shift)이라고 하며 생체시계의 주기가 재조정 ()되는 현상을 재설정이라고 한다.


일주기는 약 24시간 주기를 의미하며 원래 라틴어의 cir (약)와 dies (하루)에서 어원이 유래하였다. 일주기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즉, 녹조류, 식물,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에서도 관찰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주기성리듬이란 수면과 각성주기, 신체 대사율, 체온, 호르몬 분비 패턴, 혈압, 심박수, 호흡수등 바이오리듬의 일일 변화지수를 말한다. 바이오리듬은 낮과 밤, 어둠과 밝음, 온도차 등 외부 환경요인에 의해서 주기성이 변조되거나 재설정되는 이른바 동조화 (synchronization) 현상이 나타난다. 모든 생물체는 고유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어 이 생체시계가 각종 생리적 조절은 물론 행동까지 관장한다.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의 중추생체시계는 뇌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 (suprachiasmatic nucleus, SCN)에 있다 (그림 1). 시교차상핵을 파괴하면 생체 주기성이 망가져 생체리듬이 깨져버린다. 1960년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유르겐 아쇼프 (Jurgen Aschoff) 박사는 지원자들을 자연광은 물론 시간을 짐작하게 하는 어떤 물건도 없는 지하창고에 살도록 한 후 행동을 조사하였다. 지원자들은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지만 거의 25시간을 간격으로 잠을 자고 깨어나는 행동을 반복했는데, 좀더 최근 하바드 대학의 찰스 짜이슬러 (Charles Czeisler) 박사 등의 보고를 통해 사람의 일주기 행동 주기가 거의 정확히 24.18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Wright et al., 2001). 24.18시간의 주기로 밤에 체온이 떨어지고, 잠호르몬이라 불리는 멜라토닌이 증가하며,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은 오후에 낮게 떨어지는 신체 변화를 보인다 (표 1).

(그림1) 포유동물에서 SCN을 통한 리듬의 조절

이렇게 생체시계의 내재된 주기는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나 환경요인에 의해서 재설정되어 24시간의 주기성을 나타낸다.

오전 1:00

T 림프구 수준이 가장 높다

산모의 분만이 빈번하다

오전 2:00

성장호르몬의 수준이 가장 높다

오전 4:00

천식 발작의 위험이 높다

오전 6:00

월경의 시작이 빈번하다

혈중 인슐린 수준이 가장 낮다

혈압과 심장박동이 증가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증가한다

멜라토닌 수준이 떨어진다

오전 7:00

꽃가루 알레르기가 가장 심각하다

오전 8:00

심장발작, 뇌졸중의 위험이 가장 높다

류마티스성 관절염의 증상이 가장 심하다

T 림프구의 수준이 가장 낮다

정오

혈중 헤모글로빈 수준이 가장 높다

오후 3:00

악력, 폐활량, 반사신경이 가장 뛰어나다

오후 4:00

체온, 맥박수, 혈압이 가장 높다

오후 6:00

소변량이 가장 많다

오후 9:00

고통을 가장 쉽게 느낀다

오후 11:00

알레르기 반응이 가장 심하다


(표 1) 신체변화의 일주기성

 

생체시계 유전자

일주기 행동에 대한 최초의 유전학적인 접근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론 코노프카 (Ron Konopka)와 세이무어 벤저 (Seymour Benzer) 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는 초파리가 유전학 실험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었는데 번데기에서 성체로 탈바꿈하는 초파리의 변태현상(우화, eclosion)이 하루 중 특정 시간에 일어남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코노프카는 이와 같은 일주기성이 유전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며 단일 유전자 에 의해서 작동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여러 동료들에게 얘기했으나 모두들 황당한 생각이라고 치부한 반면, 그의 지도교수 벤져 박사만은 그의 독특한 발상을 실험으로 입증해 보도록 허락하였다. 코노프카는 우화의 일주기성이 변화된 돌연변이를 찾고자 초파리 2,000마리에 약물을 먹여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유발한 후 그 활동/휴식 행동을 조사하였다. 그들은 일주기가 짧거나 긴 돌연변이를 발견하였고, 이 돌연변이를 피리어드 (Period), 혹은, 줄여퍼 (Per)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은 세 마리의 특징적인 초파리를 발견했는 데, 두 마리는 주기가 각각 19시간, 28시간이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아무 때나 자거나 돌아다니는 행동을 보였다(Konopka and Benzer, 1971).

그 이유는 록펠러대학과 브란다이스 대학 등에서 수행된 피리어드 유전자에서 발견된 돌연변이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로 1986년에 와서야 밝혀지게 되었다. 이 연구는 하나의 유전자가 동물의 일주기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일주기 유전자를 찾기 위해 록펠러 대학의 두 대학원생 아미타 세갈 (Amita Sehgal)과 제프리 프라이스( Jeffrey Price)는 7천 마리의 초파리 행동을 조사해서 타임리스 (timeless)라는 새로운 유전자를 밝혀내게 되었다 (Sehgal et al., 1994).

생체시계의 작동원리

그러면 이 두 가지 유전자가 어떻게 일주기 행동을 조절하는 것일까? 유전자는 번역과정을 거쳐서 단백질을 만든다. 피리어드와 타임리스 두단백질은 서로 결합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억제하는 피드백 작용을 하는데, 이 과정이 정확히 하루를 주기로 일어나기 때문에 일주기 행동이 생긴다. 그러면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대륙 간 여행을 해서 시차가 생기는 곳으로 가면 어떻게 일주기 리듬이 재설정 (entrainment)되는 것일까? 초파리의 경우는 타임리스가 빛에 약하기 때문인데, 아침이 오기 전 새벽에 빛을 보게 되면 하루가 빨리 시작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저녁 무렵에 빛을 보게 되면 하루가 길어지게 된다. 이렇게 다시 하루가 태양빛에 따라서 다시 시작되거나 좀더 늦추어질 수 있다 (그림 2).

(그림 2) 초파리의 리듬 유전자 조절과정 모식도

1997년 노스웨스턴 대학,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의 조셉 다카하시 (Joseph Takahashi)등은 생쥐에서 사라진 타임리스와 피리어드 유전자 산물을 클락 (Clock)이라는 단백질이 다시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ntoch et al., 1997). 생쥐에서 클락 유전자 발견은 가히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1998년 [사이언스]는 이 발견을 그 해 10대 발견 중의 하나로 꼽았다. 이들의 연구는 일주기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고자 하는 붐을 일으켰고 금광을 찾아 몰려든 광부들처럼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야광충, 설치류, 물고기, 곤충, 개구리, 식물 그리고 사람이 공통적으로 앞서 언급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ppert and Weaver, 2001).

 

이들 연구에 의해서 일주기 행동이 생체시계 유전자 발현의 24시간 주기 피드백에 따라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주기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의 발견과 연구는 유전자 진단에 이용되는 외에도 18세기 식물학자 린네 교수가 꽃의 일주기성을 이해함으로써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것처럼 (그림 3) 전체 노동자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야간 근로자의 작업 효율증대와 수면 장애와 계절성 질병의 치료 및 생체 리듬을 이용한 약물치료등에 광범위하게 응용될 것이다.


(그림 3) 18세기 스웨덴의 저명한 식물학 린네 교수가 하루 중 서로 다른시간대 피는 꽃으로 꾸민 꽃시계(Floral Clock)


참고문헌

- Antoch MP, Song EJ, Chang AM, Vitaterna MH, Zhao Y, Wilsbacher LD, Sangoram AM, King DP, Pinto LH, Takahashi JS. Functional identification of the mouse circadian Clock gene by transgenic BAC rescue. Cell 1997. 89:655-667

- Konopka RJ, Benzer S. Clock mutants of Drosophila melanogaster. Proc Natl Acad Sci USA 1971. 68:2112-2116

-Reppert SM, Weaver DR. Molecular analysis of mammalian circadian rhythms. Annu Rev Physiol 2001. 63:647-676.

-Sehgal A, Price JL, Man B, Young MW. Loss of circadian behavioral rhythms and per RNA oscillations in the Drosophila mutant timeless. Science 1994. 263:1603-1606

- Wright KP Jr, Hughes RJ, Kronauer RE, Dijk DJ, Czeisler CA. Intrinsic near 24-h pacemaker period determines limits of circadian entrainment to a weak synchronizer in humans. Proc Natl Acad Sci U S A 2001. 98:14027-14032

저자약력

최영식 박사
- 1994년 서울대 자연대 분자생물학과 졸업 (이학사)
- 1996년 서울대 자연대 분자생물학과 (이학석사)
- 2001년 서울대 자연대 생명과학부 (이학박사)
- 현재 서울대 자연대 생명과학부 (박사후연구원)

김경진 교수
- 1975년 서울대 문리대 동물학과 (이학사)
- 1979년 서울대 대학원 발생생물학 (이학석사)
- 1984년 미 일리노이대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과 (이학박사)
- NRL 발생 및 신경내분비연구실
-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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