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동향
리틀 메딕, 우리 몸 속 미생물
- 등록일2020-11-18
- 조회수2547
- 분류기술동향 > 생명 > 생명과학
[바이오리포트] 리틀 메딕, 우리 몸 속 미생물
이대희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몇 년 전에 아내와 두 딸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 외삼촌이 수입하여 개봉했던 영화 “리틀 메딕: 몸속탐험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호기심 많은 12살 소년 나노가 악당 슐로터 박사에게 속아 고봇이라는 수상한 약을 먹고 조종당하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주 작아진 몸으로 초소형 캡슐을 타고 할아버지 몸 속으로 들어가 세균 로봇인 고봇을 퇴치한다. 독일 의사 과학자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Dietrich Groenemeyer, 1952~)가 쓴 과학 동화 ‘나노의 인체 탐험(Der kleine Medicus)’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가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으로 미래 의학 기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의 주인공인 나노는 할아버지의 몸 속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위(胃), 장(腸) 등을 탐험하게 된다. 이때 장 속 많은 세균들 사이에서 세균 로봇인 고봇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할아버지를 구하고 무사히 할아버지의 몸 밖으로 나온 나노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장 속에 왜 그토록 많은 세균들이 살고 있었는지 궁금해 했을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인 “리틀 메딕(little medic)”이 이미 그 답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필자 생각에는 리틀 메딕은 나노가 할아버지 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탔던 초소형 캡슐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현재 약 1023 인간 세포가 있으며, 단일(100 = 1) 종의 인간이 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세포 수는 약 1030이고, 그 미생물은 약 1012 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숫자로만 보면 지구의 주인은 미생물이며, 우리는 미생물과 함께 살고 있는 손님 정도 될 것 같다. 우리 몸에도 이미 많은 미생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 몸의 미생물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미생물들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이 미생물들이 바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리틀 메딕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우리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지난 2006년 미국 워싱턴 대학(Washington University) 제프리 고든(Jeffrey Gordon) 박사의 흥미로운 연구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프리 고든 박사는 비만 쥐와 마른 쥐의 분변에서 회수한 미생물을 무균 쥐에 주입한 결과 비만 쥐의 분변에서 얻은 미생물을 주입한 무균 쥐가 마른 쥐의 분변에서 얻은 미생물을 주입한 무균 쥐보다 더 빠르게 비만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비만인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 속 미생물 종류가 서로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여자 쌍둥이 중 비만인 쌍둥이와 마른 쌍둥이의 분변에서 얻은 미생물을 무균 쥐에 주입한 결과 앞선 연구 결과와 마찬가지로 비만인 쌍둥이의 미생물을 주입한 무균 쥐가 더 빠르게 지방이 증가되어 비만이 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우리의 장 속 미생물이 염증성장질환, 과민성장증후군 같은 소화기질환뿐만 아니라 당뇨, 파킨슨병, 자폐증까지 다양한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연이어 보고되었다. 그래서 장 속 미생물은 우리 몸의 ‘제2의 장기’라 불리며 건강한 장 속 미생물이 곧 건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정상인 아이들에 비해 더 높은 비율로 변비, 설사와 같은 위장 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실제 미국에 살고 있는 한 자폐 소년은 7년동안 설사로 고생하다가, 원래 살고 있던 장 속 미생물을 없애고 새로운 미생물들로 바꿔주었을 때 설사가 멈췄으며 자폐의 정도도 좋아졌다고 한다.
요즘 유산균과 같이 우리 몸에 이로운 미생물인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를 건강을 위해 꾸준히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바이오틱스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연구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수는 매우 많지만 아직 어떤 미생물이 어떤 사람에게 유익한지, 유익하지 않은지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의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 리틀 메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똑똑하게 만들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합성생물학을 이용한 장 속 미생물 똑똑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다.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이미 장 속 미생물을 이용한 질병의 예방-진단-치료의 전주기 관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장 속 미생물을 프로바이오틱스가 아닌 살아있는 약(living medicine)으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신로직(Synlogic) 사는 장 속 미생물을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하여 살아있는 약으로 개발하여 여러 질병의 치료에 적용하는 임상 시험 중에 있다. 특히 기존에 치료법이 없거나 치료 효율이 낮은 질병을 대상으로 예방-진단-치료가 가능한 더 똑똑한 장 속 미생물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많은 관심과 함께 대규모 투자를 받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질병의 치료에 이용되기 위해서는 질병의 표지물질(biomarker)을 인식하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해당 질병의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장 속에 정착하여 잘 사는 성질을 원래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장기간 장 속에 살면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살아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로바이오틱스는 장 속에 살면서 질병의 표지물질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합성생물학의 유전자회로(genetic circuit)를 프로바이틱스에 장착하면 된다. 유전자회로는 특정 물질을 인식하여 이를 형광 물질을 생산하여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DNA에 프로그래밍된 일종의 바이오센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질병의 표지물질을 인식할 수 있는 유전자회로를 프로바이오틱스에 장착하고, 형광 물질 대신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하면 똑똑한 프로바이오틱스가 되어 살아있는 약이 될 수 있다.
살아있는 약으로 개발하기 위해 사용되는 많은 프로바이오틱스 중에서 대표적인 미생물은 대장균 니슬 1917 (E. coli Nissle 1917)이다. 이 미생물은 1917년 독일의 알프레드 니슬(Alfred Nissle, 1874~1965) 박사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독일군 병사의 대장에서 처음 분리한 미생물로 그의 이름을 따라 대장균 니슬 1917로 명명되었다. 이 대장균은 사람의 대장에 살면서 유해균의 번식을 막고, 위장장애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현재는 의사의 처방전이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위장장애와 복부팽만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인 대장균 니슬 1917을 이용하여 똑똑한 리틀 메딕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에서 장에 발생한 염증의 표지물질인 질산염(nitrate)을 인식하여 형광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회로를 개발하고, 이를 대장균 니슬 1917에 장착하였다. 이렇게 똑똑해진 대장균 니슬 1917을 실험동물 쥐에 주입하여 6일동안 관찰한 결과 쥐의 장 속 염증이 심해지자 쥐의 분변에서 형광 세기가 비례하여 증가되었다. 즉, 프로바이오틱스가 쥐의 장 속에서 정착하여 살면서 염증을 인식하여 분변의 형광 물질로 염증의 발생을 알려준 것이다. 또한 해당 연구진은 염증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염증의 또다른 표지물질인 티오황산(thiosulfate)이 질산염과 동시에 장 속에 존재할 때만 형광 물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회로도 개발하여 보고하였다. 이는 국내 합성생물학 기술이 헬스케어 분야의 새로운 적용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앞으로 형광 물질 대신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천연물을 생산하여 진단과 동시에 치료가 가능한 프로바이오틱스의 개발도 기대되고 있다.
장 속 미생물의 종류와 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식습관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그 종류와 수가 변하기 때문에 장 속 미생물이 언제 어떻게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 일반화하여 말하기는 아주 어렵다. 특히 장 속에 사는 수 많은 미생물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며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지 아직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 몸 속 미생물에 대한 많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미생물과 우리의 건강 사이에 존재하는 더 정확한 과학적 증거들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늘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던 수많은 우리 몸 속 미생물을 우리가 목적에 맞게 직접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잠재력은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미생물의 설계와 통제는 합성생물학을 통해서 좀 더 정교하게 가능해질 것이며, 유전자회로와 같은 합성생물학 기술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 목적에 적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리틀 메딕의 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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