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동향
노화는 정복 가능한가?
- 등록일2021-11-18
- 조회수3164
- 분류기술동향 > 레드바이오 > 의약기술
[바이오리포트] 노화는 정복 가능한가?
김천아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전문연구단 선임연구원
당신에게 노화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해가 다르게 힘들어지는 계단 오르기, 몇 년 전과 다른 유연성 그리고 노쇠한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노화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이미 노화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에게 이런 노화를 되돌릴 수 있을지 묻는다면? 노화는 인간이 처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며 이를 되돌리는 것은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학자들 역시 오랫동안 노화를 시간에 따라 생체 기능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하여, 노화를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유전학, 세포 생물학의 빛나는 발전으로 AIDS, 암 등 해결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질병도 생명체가 감당해야 할 기본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심지어 각 생명체의 정해진 조건으로 여겨지던 수명도 단 몇 개의 유전자 조작으로 제어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급속도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더욱더 흥미로운 사실은 수명을 제어할 수 있는 유전자 회로가 생각보다 많은 종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노화를 매력적인 미개척지로 여기기 시작했으며, 노화 정복을 꿈꾸는 야망 있는 탐험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화를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모든 변화로 추상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넘어 노화로 인해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공통 징표를 구체화하고 근본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노화를 제어할 방안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 노화 세포 치료 가능성 대두
우리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나이가 듦에 따라 세포도 늙는다. 세포를 체외에서 계속 배양하여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는 노화 세포로 변한다. 노화 세포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손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세포로서 자신이 원래 수행하던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변 세포를 노화 세포로 변형할 수 있는 분비 물질을 배출한다.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주변세포를 노화세포로 변형시키는 특성 때문에 노화 세포는 흔히 좀비 세포라 불린다.
노화 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여러 장기에 점점 축적되며, 노화 세포의 분비물은 혈관을 타고 여러 장기로 퍼져나가 노화 세포의 축적을 촉진한다. 노화 세포의 축적이 만성 신장 질환, 퇴행성 관절 질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감소,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다양한 노인성 질환과 임상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노화 세포 축적 여부를 임상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초기부터 제어할 수 있는 노화 세포 진단 및 치료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노화 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이 노인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명도 연장할 수 있음이 생쥐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약물 스크리닝으로 노화 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으며, 노화 세포만이 특이적으로 가지고 있는 표면 단백질을 인지할 수 있는 CAR-T 면역 세포 치료제도 노화 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노화 세포의 분비물만을 억제하여 노화 세포를 제어하거나 노화 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릴 방법 또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 노화 치료제 개발 전쟁의 시작
노화 치료제 개발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노화 세포 치료제를 선점하기 위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실제로 노화 세포 치료제를 처방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WHO에서 고령(old age)에 질병코드 MG2A를 부여하면서 노화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지만, 노화 그 자체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데는 사회적, 윤리적, 경제적으로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노화가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며, 노화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모든 인류가 처방 대상이 되는 노화 치료제의 특성상 차별 없이 치료제를 공급하는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노화를 임상적으로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노인성 질환 개선을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상시험의 관점에서 노화 그 자체를 치료하는 일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따라서 노화 세포의 축적 여부와 노화 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지표 마련이 시급하며, 노화 세포가 생성되기 시작한 건강한 사람에게 노화 세포 치료제를 처방하기 위해서는 약물의 부작용이 엄밀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또한 장기별로 노화 세포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개발한 노화 세포 치료제를 정확히 표적 장기에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최근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명과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 중 하나로 ‘노화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이해’를 내세웠으며, 유수의 선진국에서는 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노화 연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노화 치료제 개발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국가 차원에서 노화의 근본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기초 연구부터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적 지표 마련과 치료제 개발까지 유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노화 연구개발 투자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계속)
☞ 자세한 내용은 내용바로가기 또는 첨부파일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