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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병에 걸릴까?- 식물 면역(Plant Immunity)의 개념과 동물 면역계와의 차이
- 등록일2025-03-19
- 조회수1567
- 분류기술동향 > 생명 >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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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간일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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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 원문링크
식물도 병에 걸릴까?- 식물 면역(Plant Immunity)의 개념과 동물 면역계와의 차이
◈본문
1. 들어가며
식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명체이지만, 의외로 '면역(Immunity)'이라는 단어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흔히 동물이나 인간만 병원체(Pathogen)의 공격을 받고, 면역 세포나 항체 등을 동원해 방어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식물 또한 무수히 많은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그리고 해충 등 다양한 병원체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동물과 달리 대부분의 식물 종들은 고착 생활을 하기 때문에 외부 환경 변화와 병원체의 위협에 대해 스스로 이동하여 회피할 수 없고, 물리적·화학적 방어체계 및 유전자 수준의 정교한 면역 반응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본 논단에서는 식물 면역 반응의 기본 작동 원리와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동물 면역계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과 의미를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2. 식물 면역의 기본 개념
2.1 패턴 인식 면역(PTI, Pattern-Triggered Immunity)
식물은 병원체를 인식하기 위해 주로 세포막 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PRR, Pattern Recognition Receptor)을 활용합니다. PRR은 미생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자 패턴(MAMP, Microbe-Associated Molecular Patterns)이나 병원균이나 해충에 의해 손상된 식물 조직에서 방출되는 분자 패턴(DAMP, Damage-Associated Molecular Patterns)을 인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병원체가 침투했음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일련의 방어 반응을 개시합니다. [1]
이를 *패턴 인식 면역(PTI)*라고 하며, 대표적인 예시로 FLS2(Flagellin-Sensing 2) 단백질이 세균 편모 단백질인 플라젤린(flagellin)을 인식해 활성화되는 과정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PTI가 활성화되면 활성산소종(ROS, Reactive Oxygen Species) 폭발, 방어 유전자 발현 증가, 세포벽 강화 등 즉각적인 방어 기작이 작동하여 병원체의 확산을 억제합니다(그림1). [1]
2.2 Effector 유발 면역(ETI, Effector-Triggered Immunity)
병원체 역시 식물의 PTI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Effector’ 단백질을 분비합니다. Effector는 식물 세포의 방어 반응을 교란하거나 세포 사멸 경로를 막아 병원체의 침투와 증식을 돕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R 유전자(Resistance gene)를 통해 이 Effector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감지하여, 더 강력하고 정교한 2차 방어를 발동합니다. 이를 *Effetor 유발 면역(ETI)*라고 합니다. [1]
ETI가 유도되면 *과민반응(HR, Hypersensitive Response)*이 일어나 병원체가 침투한 부위를 국소적으로 세포 사멸(PCD, Programmed Cell Death)시키고, 동시에 주변 조직에 강력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 병원체 확산을 막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일반적으로 PTI보다 강력하여, 감염 시 병원체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합니다(그림1). [1]
그림 1. Zig-Zag 모델
식물이 병원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면역 시스템을 설명하는 Zig-Zag 모델입니다. [1] 식물은 각종 PRRs을 통해 MAMPs와 DAMPs 신호를 처음 감지하여 초기 면역반응이자 기본 방어 시스템인 PTI를 활성화합니다. 이에 일부 병원체는 Effector 단백질을 식물에 주입하여 PTI를 억제하고 면역 반응을 회피하려 합니다. 그 결과, 식물은 다시 병원체에 취약한 Effector 유발 감수성 상태(ETS, Efffector-Triggered Susceptivility)가 됩니다. 식물은 관련 Effector를 인식하는 R 단백질을 통해 다시금 생존을 위해 PTI보다 더욱 강한 면역 반응인 ETI를 일으킵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병원균의 Effector 단백질과 식물의 R 단백질간의 군비경쟁이 반복되면서, 식물 면역 시스템은 점차 강화됩니다.
3. 식물 면역 반응의 주요 특징
3.1 물리적·화학적 장벽
동물과 달리 식물 세포는 *세포벽(cell wall)*이라는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병원체의 물리적 침입 자체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키틴나제(Chitinase), 글루카나제(Glucanase)와 같은 효소를 분비하여 곰팡이와 같은 병원체 세포벽을 분해하거나, 2차 대사산물(항생물질, 항진균물질 등)을 생산해 병원체의 성장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2]
3.2 국소 반응과 전신획득저항(SAR, Systemic Acquired Resistance)
식물 면역 반응이 발동되면, 감염된 부위에서 국소적 방어가 일어나면서 동시에 주변 조직, 나아가 식물 전체로 ‘면역 신호’가 전달됩니다. 이를 통해 식물은 재차 감염이나 다른 부위로의 병원체 확산에 대비한 전신획득저항(SAR) 상태에 돌입합니다. [3]
SAR은 살리실산(Salicylic acid), 자스몬산(Jasmonic acid), 에틸렌(Ethylene) 등의 호르몬 신호를 매개로 하며, 특정 방어 유전자를 전신적으로 발현시켜 식물 몸 전체가 병원체 저항성을 얻도록 만듭니다. 이는 감염되지 않은 다른 조직까지 감염에 대응을 준비하는 프라이밍(priming)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4]
3.3 세포 사멸 유도와 신호 전달
동물에서는 면역 세포가 순환계(혈액, 림프액)를 통해 병원체가 침투한 부위로 모여들어 방어 작용을 수행하지만, 식물은 이러한 면역 세포 순환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식물의 주된 면역반응 작용은, 감염 부위를 중심으로 한 국소적 세포 사멸과 함께, 호르몬 신호나 전기 신호를 통해 주변 혹은 원거리 조직에 방어 인자를 활성화하는 기작입니다.
4. 동물 면역계와의 차이점
4.1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의 구분
동물 면역계는 선천면역(innate immunity)과 후천면역(adaptive immunity)으로 크게 나뉩니다. 특히 후천면역은 항원 특이적 T세포, B세포, 항체 등을 활용해 병원체에 대한 ‘정밀 타격’을 가능하게 합니다. [5]
반면 식물은 기본적으로 선천면역만 가지고 있으며, T세포나 B세포, 항체 생산과 같은 동물의 후천면역 과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원체 침투 경험에 따라 식물 전체가 저항성을 높이는 SAR이나, 프라이밍(priming) 과정을 통해 면역 기억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제한적이지만 동물의 적응면역과 유사한 기능적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2 순환계와 면역 세포의 부재
동물은 체내에 혈액과 림프가 순환하고, 그 안에 특화된 면역 세포가 존재하여, 감염 부위로 직접 이동해 병원체를 포식하거나 항체를 분비하는 등 능동적 방어가 가능합니다.
식물은 별도의 순환계나 이동성 면역 세포가 없기에, 초기 감지 면역 반응 → Effector 인식 → 국소적 방어 및 세포 사멸 → 신호 확산 → 전신 방어 체계 유도와 같은 고도로 조직화된 단계를 통해 방어 전략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식물과 동물이 서로 다른 생활사와 신체 구조를 갖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4.3 조직 재생 능력과 방어 전략
동물 조직은 대체로 재생 능력이 제한적인 반면, 식물은 잎, 줄기, 뿌리 등 많은 조직에서 *분열조직(meristem)*을 통해 재생이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따라서 식물은 병원체 감염 부위를 희생(세포 사멸)시키더라도, 나머지 조직이 계속 자라나 전체 생존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5. 연구 방법과 최근 동향
5.1 식물 면역 반응 연구의 역사
식물 병리학(Plant pathology)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곰팡이병·세균성 반점병 등의 발병 메커니즘과 방제에 대한 연구가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식물호르몬(Plant hormone) 연구와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식물 면역 시스템의 분자적 기작이 활발히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PTI와 ETI 개념은 2000년대 초·중반에 정립되어, 식물 면역 연구가 “단순 질병 방제를 넘어 식물과 병원체의 상호작용 전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만들었습니다. [6]
5.2 염기서열분석 기술과 omics의 발달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과 전사체(Transcriptome),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등의 기술 발전으로, 식물 면역 관련 유전자들의 다양성과 작동 원리가 대규모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병원체의 Effector가 어떤 식물 유전자의 산물을 교란하며, 식물은 어떤 방어 신호 네트워크로 응전하는지 체계적인 지도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5.3 CRISPR/Cas9 등 유전공학 활용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Cas9 등)을 이용해 식물의 특정 면역 관련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교정함으로써, 병원체 저항성이 개선된 작물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벼, 밀, 토마토 등의 주요 식량작물에서 병원균에 저항성을 갖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도입하거나 변형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식물 병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응용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6. 식물 면역 연구의 의의와 전망
6.1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량 안보
화학 농약이나 살균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작물의 병 저항성을 자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향후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에 대처해야 하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식물 면역 시스템을 분자 수준에서 정교하게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구현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6.2 Holobiont 관점과 식물-미생물 상호작용
최근에는 식물을 둘러싼 미생물 군집(microbiota)을 함께 고려하는 Holobiont 개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Holobiont란 숙주와 그에 공생·길항·기생하는 모든 미생물이 하나의 생태학적 단위를 이룬다는 개념입니다. [7]
식물은 주변 미생물과 양방향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병원체 침투 시에 유익균을 재빠르게 모집하거나, 해로운 균주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가령 뿌리(Rhizosphere)에서는 root exudate를 통해 특정 미생물군의 증식을 촉진하여 병원균의 증식 기회를 차단하기도 하며, 잎(Phyllosphere) 표면에서는 군집을 이루는 특정 곰팡이나 세균들이 다양한 병들의 방어 수준을 높이기도 합니다.
Holobiont 관점에서 식물 면역은 더 이상 ‘식물 단독’의 반응이 아니라, 식물-미생물 군집-환경이 삼중으로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결과로 이해됩니다. 이는 병원체 방제, 작물 개량, 친환경 농법 등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그림2). [7]
그림 2. 식물을 둘러싼 복합적인 환경
해당 그림은 식물과 그에 연관된 미생물 군집간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보여줌과 동시에 주변 환경 요인과의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으로 빛, 수분, 온도 그리고 생체리듬이 식물과 주변 미생물 간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생물에는 병원성, 공생성, 유익성 미생물이 포함되며, 각각 뿌리, 잎, 줄기 등의 식물 부위와 상호작용합니다. 또한 휘발성 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s), 뿌리 분비물(root exudates), 식물과 공존하는 박테리아 및 균류가 위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6.3 복합 환경 요인과 미래 연구 방향
식물 면역은 온도, 습도, 빛, 토양 영양 등 다양한 환경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여러 환경 스트레스(가뭄·고온·고염 등)는 식물 면역 체계와 주변 미생물 군집 사이의 균형을 흔들어, 병원성 균주가 우세해지거나 반대로 유익균이 증식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 연구에서는 복합 스트레스 상황에서 식물-미생물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정밀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장기적·포괄적 관점에서 식물 면역을 연구하려면, 단순 실험실 연구를 넘어 실제 필드에서의 미생물 군집 변화, 기후 요소, 토양 생태학 등을 통합적으로 관찰하는 시도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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