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동향
AI와 손잡은 단백질 설계: 인공 단백질
- 등록일2025-03-04
- 조회수76
- 분류기술동향 > 생명 >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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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발간일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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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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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링크
AI와 손잡은 단백질 설계: 인공 단백질
◈본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중대질환진단융합연구단
선임연구원 박광현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기술 변곡점이 도래했다. 인류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활용’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창조’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생명과학의 융합으로 탄생한 ‘인공 단백질’은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 단백질이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처음부터(de novo) 설계하거나, 기존 단백질 구조를 목표에 맞게 정밀하게 재설계한 분자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단백질 공학이라 해도 주로 자연에서 발견된 단백질에 약간의 변형을 주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베이스와 혁신적인 AI 알고리즘의 결합으로 아미노산 서열과 3차원 구조를 원하는 대로 ‘맞춤 제작’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는 마치 기성복을 구입해 약간 수선하던 방식에서, 고객의 체형과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는 맞춤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 차이다. 특정 질환 표적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면서도, 체내 반감기는 연장하고 면역원성은 최소화한 단백질을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이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수십 년간 생물학계의 난제로 여겨졌던 ‘단백질 접힘 문제’를 AI로 해결함으로써, 단백질 구조 규명에 소요되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과거에는 X선 결정학이나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 분석에 의존해 단백질 한 개의 구조를 밝히는 데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단 몇 시간 만에 정확도 높은 구조 예측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구글, 메타, 오픈AI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거대 언어 모델(LLM)의 원리를 단백질 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놀랍게도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가 아미노산 서열이라는 ‘생명의 언어’도 해석하고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어 모델의 적용이 가능한 이유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인간 언어와 같은 패턴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개발한 모델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기능과 안정성을 갖춘 단백질을 며칠 만에 설계해내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기존 재조합 단백질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현재 시판 중인 많은 단백질 의약품들은 반감기가 짧아 환자가 빈번히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한 인체가 외부 단백질로 인식해 예상치 못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I 기반 단백질 설계 기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질병 표적과 결합하는 핵심 부위를 유지하면서도 반감기 연장, 투과력 강화, 생산 공정 최적화까지 고려한 '다목적 맞춤형 단백질'의 설계가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암 치료 분야에서는 조직 침투력이 뛰어난 소형화된 항체 모방 단백질을 설계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혁신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의 항체 치료제는 크기가 커서 종양 내부 깊숙이 침투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데, 인공 단백질 기술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공 단백질 기술의 응용 가능성은 암 치료를 넘어 자가면역질환, 희귀질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면역 반응의 특정 경로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전체 면역 기능은 보존하면서도 병적인 자가면역 반응만을 억제하는 정교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희귀질환 치료 분야에서도 인공 단백질은 큰 잠재력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약 7,000여 종의 희귀질환이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시장 규모가 작아 제약사들의 투자가 제한적이기 때문인데, AI 기술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단축함으로써 경제적 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혁신적 치료 옵션을 제공할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로 일부 AI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이미 동물 실험을 넘어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처음부터 설계한 인공 단백질’이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잠재력을 확인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AI 바이오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모더나, 화이자, 로슈 등 대형 제약사들은 경쟁적으로 인공 단백질 설계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존 의약품 개발 방식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LG화학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해외 AI 기술 벤처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거나 자체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 분야의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더욱 과감한 투자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백질 구조와 기능에 대한 심층적 이해, 컴퓨터 과학과 딥러닝 알고리즘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이를 산업화할 수 있는 안목을 두루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 대학, 연구소,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생태계 구축 또한 필수적이다.
물론 인공 단백질 기술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전례가 부족한 만큼 예상치 못한 면역 반응이나 생산 공정상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구조의 단백질이 인체 내에서 장기적으로 안전한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함께, 이를 산업적 규모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정 개발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전례 없는 치료제인 만큼 이에 따른 윤리적, 규제적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규제 당국은 인공 단백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할 적절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해야 하며, 이는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환자 안전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 단백질이 제약, 바이오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생명과학 지식이 AI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으며, 이는 인류가 분자 수준에서 질병 메커니즘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나아가 인공 단백질 기술은 의약품 개발을 넘어 환경 오염 물질 분해, 이산화탄소 포집, 대체 식품 개발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장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혁신적 도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단백질로 난치병을 정복한다는 비전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닌 의학의 주류로 자리 잡을 것이다. AI와 결합한 인공 단백질 기술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인류의 건강과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핵심 열쇠로 자리매김할 날이 머지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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