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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35 미래사회 – “식물공장형 그린백신” 편]
제8화 “중동전쟁”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에 발표한
'2019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 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네, 사우디아라비아 좀 다녀오지 않겠나?”
국가생명정보기술원 산하 기술지원단 소속 강현 연구원은 단장인 나형욱 박사의 난데없는 지시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강 단장은 현의 직속 상사였다. 연구소 내에서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중동까지 출장을 보내려 하다니. 물론 현도 나 단장의 뜻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지시가 내려올 줄은 몰라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예. 아니 그 먼 곳을 지금 갑자기 왜요? 설마 저보고 ‘메르스(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를 해결하고 오라는 말씀은 아니죠?”
“맞아. 자네 말고는 해결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래.”
최근 중동에선 메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기승을 떨쳤던 메르스는 2025년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문명국에선 급속도로 사그라들고 있었다. 하지만 치사율이 더 높은 변종이 등장한 데다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개도국에선 백신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한 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사망자 숫자를 헤아리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아니, 저는 바이러스 전문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고 많은 연구원 중에 하필 왜 제가?”
“동물이건 식물이건 유전자 설계는 자네가 특기잖아. 현지에서 국제공동연구진을 꾸리는 모양이던데 아예 자네를 지목해서 파견 요청이 들어왔어.”
“아…. 그것 때문이군요” 현은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이 강경하게 항변하던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나 단장의 말을 듣고 보니 현도 자신이 가는 것이 가장 일 처리가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이 개발돼 있다고는 하지만 의료시스템이 낙후된 후진국에선 이런 약품을 주사로 맞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백신의 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문제였고, 개발된 백신의 유통기한도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 억지로 약품을 끌어모아 공급해도 개도국에선 주사를 놓을 줄 아는 의료인력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물론 먹는 약을 개발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바이러스 백신을 먹는 약으로 만드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방법은 꼭 한 가지가 있었다. 백신 성분을 가진 농작물을 개발하는 것이다.
“예방주사 맞고 며칠 내로 출발해. 현지에선 지금도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데 우리만 바쁘다고 참여 안 할 수도 없잖은가. 다른 일정은 내가 어떻게든 조정할 테니까.”
“휴. 알겠습니다.”
“다른 것 필요한 건 없어? 권하선 씨 같이 보내줄까?”
“예. 컴퓨터 시스템으로 데이터 처리하려면 하선 씨가 꼭…… 아. 아닙니다. 다른 도움은 현지에서 받지요. 뭐.” 현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굳이 굳이 혼자서 가길 자청했다.
사흘 후. 현은 작은 가방 하나만을 들고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인근에 꾸려진 간이 실험실에 도착했다. 사막 기후가 숨통을 조여오는 살풍경한 곳. 연구실 건물도 곧 무너질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만큼 허름했다. 그러나 연구 기자재만큼은 세계 각국에서 실어온 첨단 장비로 갖춰져 있었다.
현의 임무는 메르스 백신 성분을 가진 ‘형질전환 식물’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식물을 길러 음식처럼 먹기만 해도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물을 식품으로 공급하면 약물 성분의 복용량과 시간을 지키기 어렵고 부작용도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이런 식물에서 다시 필요한 성분만을 추출해 알약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미 B형간염, LTV(설사병의 일종) 등을 예방하는 ‘먹는 백신’은 2020년대에 개발이 끝나 유통되고 있었다.
“你好。您是中国团队的成员吗?(안녕하세요. 중국 연구팀 분이시죠?)”
“아 안녕하세요. 유명하신 분을 다 뵙게 되네요. 제가 출장 오길 잘 했군요.”
국제 공동연구팀에 합류하게 된 현은 중국 연구팀 소속 과학자에게 말을 걸었다. 앳돼 보이는 외모에 선도 가냘파서 누가 보아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쁜 여성이었다. 어설픈 중국어로 인사를 해 보았다가 갑작스레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을 듣고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 한국 분인 줄 몰랐습니다. 한(韓) 씨는 중국에서도 쓰기에 그만….”
“별말씀을요. 중국팀으로 왔으니 당연하지요. 저는 중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현지 기업에 바로 취직했어요. 휘경이라고 불러주세요. 중국어로는 ‘후이징’이라고 씁니다만.”
“다른 게 아니라, 실험결과를 데이터로 바꿔서 시뮬레이션 처리해줄 분을 찾고 있는데 다들 닥터 한을 찾으라고 해서요.”
“안 그래도 강 박사님이랑 함께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본래 화장품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바르는 화장품을 먹는 약으로 개발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자량 변화에 따른 효과 차이를 시뮬레이션 해 보는 일을 자주 했었어요. 저라도 도움이 되시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먹는 약을 만드는 거니까요. 중국 연구진이 박사님을 이곳까지 모시고 온 이유를 알겠군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두 사람은 쉽게 의기투합했다. 현이 새로운 유전자 구조를 설계해 넘겨주면, 한 박사는 그 설계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넣고 가상 실험을 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며칠 사이에 가장 효과가 높을 것 같은 식물의 DNA 구조를 몇 가지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현이 중동 사막에서 활약하고 있을 무렵, 하선은 갑자기 ‘나 출장 좀 다녀올게’라는 짧은 통화만 남기고 나가버린 현에게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나 단장에게 전해 들었지만 굳지 자기랑 같이 갈 기회까지 마다하고 혼자 떠나 버린 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야. 이 남자.”
하선은 출국하겠다며 걸려온 현의 전화를 끊고 몇 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그 시간 중동. 밤 11시가 가까워질 무렵인데도 현과 휘경 두 사람은 밤늦도록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연구 기간이 하루라도 줄어들면 그사이 몇 사람이 더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두 사람은 매일같이 분주하게 연구에 매진했다.
“자. 이제 남은 문제는 이 DNA 구조를 가진 식물을 만드는 일인데요. 이곳 중동 땅에서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식물 중에 가능한 것이 있을지 봐야 해요. 몇 가지 살펴봤는데 과일류가 적당해 보이긴 해요. 바나나나 포도, 아 올리브도 가능하려나….”
“아. 올리브 먼저 해 보면 어때요? 유효성분을 기름으로도 쉽게 뽑아낼 수 있을지 몰라요. 성공하면 금방 알약으로도 만들 수 있을 텐데.” 휘경이 기뻐하며 말했다.
“아 잘됐네요. 그럼 제가 지금 한국 연구팀에 바로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저쪽은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니. 이건 식물 전체의 유전자를 다 확인해야 하니 저쪽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해 달라고 해서 넘겨받으면 일이 빠를 거예요. 아. 하선이 잘 있으려나.”
현은 문득 연인이자 직장동료인 권하선 연구원이 생각나 중얼거렸다.
그리고 현은 쓰고 있던 스마트 안경의 스위치를 누르고 하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상통화로 본 하선은 도끼눈을 뜨고 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예요? 무슨 일인데요?”
“아니. 여기서 실험을 하다가 시뮬레이션할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국제연구진도 여기까지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오진 않았거든. DNA 설계도를 보내줄 테니까 올리브에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을 좀….”
“이봐요. 지금 그 전에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요?”
“으… 응?”
현은 아차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이곳까지 혼자 날아오고 하선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 1주일이 훌쩍 더 지났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저기… 여긴 메르스 위험지역이잖아. 위험한데 굳이 자기까지 올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나한테만 위험하고 자기는 안 위험해요? 왜 그래요 도대체!”
하선은 결국 소리를 질렀다.
현은 쩔쩔매며 통화를 마치고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하선에게 보낼 e메일을 또각또각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통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휘경은 짐짓 말을 걸었다.
“권하선 박사님이세요?”
“아 하선 씨를 아십니까.”
“강 박사님이 발표한 논문에는 반드시 그분 이름이 있었어요. 누구신지 궁금했습니다.”
“제 가장 소중한 동료입니다. 제가 그동안 냈던 성과는 모두 하선 씨 덕분이에요. 이번에 한 박사님이 맡아 주셨던 일을 한국에서는 대부분 하선 씨가 해 주곤 했어요.”
하선에게 잔뜩 혼이 났는데도 여전히 싱글거리며 e메일을 쓰고 있는 현을 바라보며 휘경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곱씹고 있었다. 그런 휘경에게 현은 다시 말을 걸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국에 들러주십시오. 꼭 하선 씨랑 같이 뵙고 싶습니다. 두 분이 비슷한 일을 하시니 알고 지내셨으면 좋겠…. 응? 표정이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권 박사님이 무척 고생이 많으시겠다 싶어서요.”
휘경은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To be continued..
글 : 전승민(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삽화 : 조진호(NC문화재단)
감수 : 김현순(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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