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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 제6화 “실시간 액체생검” 편

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 제6화 “실시간 액체생검” 편

  • 발행일 2020-12-01
  • 출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 담당자 김무웅 ( 042-879-8375 / moongkim@kribb.re.kr )
  • 조회수 5533
  • 키워드
    #실시간 액체생검 #미래유망기술 #바이오미래유망기술
  • 첨부파일

개요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년 생명과학 미래사회- “실시간 액체생검” 편]

 

 제6화  “무거운 어깨”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권하선 국가생명과학기술원 데이터팀장은 연구기관 기술지원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현 단장과 부부사이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었지만 결혼 후 눈앞에 쏟아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현은 스스로 ‘가정에 충실하다’고 생각해 왔다. 자동화되지 않은 가사는 거의 없는 세상이 됐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손은 반드시 필요했다. 현은 늘 ‘가사에 대해선 잘 모르니 하선을 최대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선과 현의 차이는 여기서 생겨났다. 어떤 날은 현이 하선보다 가사에 더 애를 쓰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현에게 그런 일은 어디까지나 ‘오늘은 아내를 많이 도운 날’이었다. 그런 현에게 하선은 늘 아쉬움을 느꼈다. 조금 더 가정일을 책임감 있게 생각해 줬으면 싶어 답답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첫째 아이는 이미 4살. 조금 있으면 유치원을 갈 나이였다. 하선은 짬나는 대로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긁어모아 지금껏 구상했던 아이의 교육방침, 그리고 그 시작이랄 수 있는 유치원 등교에 대해 두 시간 가깝게 공을 들여 현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묵묵히 듣던 현은 마지막에 “당신이 그냥 알아서 해”라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현의 이런 무신경함에 뾰로통해진 하선은 다음 날 새벽 ‘아이들 좀 챙겨줘요. 일찍 출근 할게요’라는 짧은 메신저 하나만 남겨두고 홀로 먼저 집을 나서고 말았다. 현은 잠에서 깬 다음에야 뒤통수를 긁으며 ‘이거 뭔가 단단히 화가 났네’ 싶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매일 아침 현과 하선은 나란히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곤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다음 출근하기 위해서였다. 현은 오늘 아침 이 일을 혼자 해야 했다. 둘째 아이는 왼팔로 안고, 첫째 아이는 오른손으로 잡은 채 집을 나섰다.


  겨우 출근한 현은 종일 데이터 팀 앞을 일부러 기웃거렸다. 하선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서다. 뭔가 불만이 있으면 정확하게 말을 해 주고 서로 결론을 내면 될 일인데, 왜 저렇게 ‘내가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먼저 깨닫지 않으면 용서치 않겠다’는 표정으로 험악하게 앉아있는지, 현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안일이 불안정하면 직장이라도 평안하면 좋겠건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김수민 연구원은 오늘 아침에도 지각을 했고, 어제 실험일지를 잘못 입력하고 퇴근한 것 때문에 오늘 실험에 오류를 만들어 연구실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고참급 연구원인 최영일 박사도 독불장군격인 성격 때문에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앙숙이던 수민과는 최근 관계에 균형이 생겨 비교적 원만했지만, 또 다른 신입연구원 한 사람과 사무실이 떠나가라 논쟁을 벌여 연구실 분위기를 살얼음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일을 하나하나 다 조율하고 있자니 현은 머릿속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이미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건만, 현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연구과제를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다.


  “도대체 형님은 단장시설에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어떻게 해치운거야?” 


  현은 현재 원장으로 있는 나형욱 박사를 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 퇴근시간이 되자 현은 하선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퇴근해 줄 수 있느냐’고 묻기 위해 직통전화를 걸었지만 하선은 받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어린이집에 연락해보니, 하선이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퇴근했다고 했다. 비록 부부싸움 중이지만, 일이 많아 보이는 자신에게 아이까지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하선의 작은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날 저녁, 홀로 연구 일정을 어느 정도 정리한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홀로그램 화면 곳곳에 흩어져있는 파일들을 긁어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현의 눈에 낯익은 공유폴더 하나가 들어왔다. 특별히 ‘검정색’ 폴더 옆에 작은 'N'자 로고가 깜박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소에서 단장급 이상 보직자들에게 우선 공개할 정보들이 들어있는 폴더다. 현을 비롯해 연구소 내 몇 사람만 이 폴더를 열어볼 수 있다. 이 폴더엔 며칠 전 진행한, 전 연구원 대상 혈액검사 기록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문득 자신의 검사결과가 궁금해진 현은 검사결과표를 전자서류에 옮겨 담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의료진의 공식 코멘트가 첨부되기 전인 듯, 검사수치만 알아보기 힘든 약어와 숫자로 기입돼 있었다. 그러나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 연구가 특기인 현은 이런 의료정보를 별 어려움 없이 읽어냈다.


  현은 한참 자신의 검사수치를 읽다가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 뱉었다.


  “휴. 왜 하필 이런 상황에.” 


  아내와 싸우고, 직원들에게 휘둘리고, 스스로 천재라고 여기던 연구분야 진척까지 더딘 상황에서,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소식이 보이자 현은 갑자기 한없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스마트 안경을 고쳐 쓰고 나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접니다. 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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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로 대뜸 형님이래. 무슨 일 있어?”   “오늘은 여러모로 형님 생각이 많이 나서요. 옛날에 췌장암 걸리셨을 때 기억나세요?”


  “갑자기 왜 엉뚱한 소리를 해. 그때 덕분에 치료 잘 하고 고마웠지. 왜 그래? 어디 아파?”


  “오늘 직원 혈액검사 수치가 나왔는데, 종양마커 수치가 높게 나와서요.”


  “뭐? 그래? 어떤 종류인데? 암종이 뭔데?” 나 원장은 염려가 돼서 물었다.


  “이게 좀 골치가 아프네요. 다행히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아닌데, 여러 수치로 보아 초기 콜란지오카시노마(cholangiocarcinoma; 담관암종)로 생각이 되요. 자세한 건 내일 형진이네 병원에 물어볼께요.” 


  형진은 현의 친구인 외과 의사다. 그의 병원에서 국가생명과학기술원 연구진의 건강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아….” 이야기를 들은 나형욱 원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과거에는 암이 의심이 가면 바이옵시(biopsy: 생검)라는 것을 진행해야 했다. 쉽게 말해 암이라고 의심되는 부위에서 조직을 조금 떼어내고, 이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검사다. 이런 검사를 포함해 인체에 발병한 수많은 병을 형태에 따라 구분하고,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의학분야를 ‘병리학’이라고 부른다.


  임상에서 병리의사가 맡고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수술 전 암 여부를 확진하는 조직검사(바이옵시), 둘째는 수술 중에 더 이상 암이 남아있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술 중 채취한 조직을 급속하게 동결해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프로즌’ 검사도 병리의사의 몫이다. 또 수술 후 떼어낸 암 조직을 샅샅이 살펴보고, 조직표본으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검사한 다음 암의 종류를 학술적 명칭까지 명백하게 밝혀내는 일도 한다. 사용할 항암제의 종류를 확정하려면 이런 검사는 결코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병리의사 없이는 암 치료과정에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과거엔 이런 검사에 시간이 걸렸고, 사람의 몸에서 작게나마 조직을 떼어내야 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판독하는 의사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가능성도 있었으며, 암 종에 따라서 조직생검이 용이하지 않은 암종들도 있었다, 2040년 현재, 병리의사의 임상적 지위는 여전히 견고했지만, 검사방식은 과거와 차이가 컸다. 수술전 바이옵시는 검사하지 않고 혈액검사로 대체하는 일이 많았다. 혈액 속에 생겨나는 미세한 핵산조각들을 분석해 암의 정확한 종류까지 알아맞히는 기술, 이른바 ‘실시간 액체생검’이 실용화됐기 때문이다. 수술 후엔 최종적으로는 병리의사의 조직학적 분석을 거친 다음 암종을 확정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액체생검 분석결과만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혈액검사만으로 암을 정확하게 검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이 걸린 암은 치료가 쉽지 않은 담관암이지만, 초기 발견시 수술적 절제술을 통한 생존률이 높았다. 또한 잔존할 수 있는 암세포들에 대해서도 실시간 액체생검 기반의 환자 맞춤형 항암제 선별을 통해 효과적인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치료 과정에서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간 이식도 고려하고 있어요. 지금부터 제 간세포 제가 떼어내서 오가노이드(장기기능모사세포)로 만들고 있을까요? 배양장치 사용 좀 허가해 주시겠어요?” 현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왜 실없는 농담을. 무허가 인체 장기배양은 불법이야. 정 불안하면 병원에 부탁해서.”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죠. 문제는….”


  “일 때문에? 지금 일이 문제인가? 치료부터….”


  “그 이야기 저도 형님한테 했어요. 꼭 5년 전에요. 말 안 들으셨잖아요.”


  “……. 자네도 안 들을 건가?”


  “형님처럼 하진 않으려고요. 그래서 말씀인데요….”

  

  “말해보게, 가능한 건 다 들어주지.”

 


************


  그날 저녁.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현을 하선은 싸늘하게 반겼다. 아파트 문을 열어주고, 식사는 했냐고 짧게 물어보고는, 조용히 손님용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현은 짧게 한숨을 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서재에 앉아 하선에게 e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엔 애써 편지함을 열어보아야 하는 ‘e메일’이 과거의 손편지처럼 구세대 감성이 넘치는 의사소통 방법의 하나였다. 현은 e메일에 [암 발생 확인함. cholangiocarcinoma로 여겨짐. 경우에 따라 입원치료도 필요할 것 같아. 알고 있어요.] 이라는 짧은 문장만을 적고, 새벽에 하선이 볼 수 있도록 예약발송을 걸어두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 하선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자기가 일어날 낌새가 보일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


  “왜 아픈데도 말을 안 했어요. 왜 그렇게 혼자서 그래요. 우리가 남이에요?” 하선은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일부러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어제 알았어.”


  “…….”


  “다른 문제도 그래. 모르니까 말을 꺼내지 않는거야. 무관심한게 아니고.” 현은 일어나 앉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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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선은 눈물이 고여 그렁그렁해진 눈을 애써 치켜뜨면서 현의 옆, 침대 위에 앉았다. 아무말 없이 조용히 현의 가슴팍을 때리기 시작했다.


  현은 그런 하선을 꼭 안으며 말했다. “내 행동은 당신을 믿는 마음에서 나오는거야. 당신이 더 잘 아는 문제 같으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거고. 화 풀어요. 내가 앞으로 좀더 노력해 볼께요. 요즘 암이라고 별다른 병도 아니고, 조심하면 될 일인데.”


  “오늘은 병원부터 가요. 응?”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 원장님하고 어제 통화했는데,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당분간 연구업무를 줄이겠다고 했거든. 오늘은 일단 출근하고, 연구프로젝트 몇 개는 후배들 나눠주면 될거야. 병원엔 낮에 형진이 한테 전화해 두면 되겠지. 집에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니 나쁘지 않잖아? 아이가 갈 유치원도 같이 가 보자고.” 


  현은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 한태수(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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