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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 제8화 “식물 종간 장벽제거기술” 편

출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조회수 1481
발간일 2021-01-21 등록일 2021-01-21
첨부파일

(21.01.21) 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_8화_식물 종간...(901.527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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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 미래사회 - “식물 종간 장벽제거기술” 편]

 

제8화  “그의 뒤를 쫓는 길”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 김수민 박사. 이것 좀 하나만 처리해 줄래요? 이건 자료를 좀 찾아봐야 될거야.”
  국가생명정보기술원 산하 기술지원단 소속 김수민 연구원은 단장인 강현 박사가 갑자기 던져주는 전자서류 뭉치를 받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최근 겨우 한 사람 몫을 하기 시작한 수민에게 현은 뜬금없이 자잘한 연구과제를 하나씩 던져주곤 했다. 

  연구에서 손을 떼고 내부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현의 관리능력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연구원 개개인의 성향에 맞춰 자율에 맡기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 하나, 누구보다 세심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수민을 대할 때도 그랬다. 과거에는 사수인 최영일 박사에게 맡겨 두고 자신의 연구에 시간을 들였다면. 지금은 어디서 들고 왔는지 인공지능만 써서 작업하면 며칠 안에 뚝딱 끝낼 수 있는 자잘한 연구를 뜬금없이 던져주곤 했다.

  수민은 이렇게 일을 받을 때 마다 마치 대학원 학생이 교수로부터 숙제(?)를 받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이런 일이 의외로 반갑게 느껴지곤 했다. 이 숙제는 정말로 특별한 점이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중, 조금만 공부하면 곧 해낼 수 있는 수준의 자잘한 일이 눈앞에 툭툭 떨어졌다. 수민은 현이 내 주는 일을 처리해 내는 것 만으로도 실무능력이 쑥쑥 늘어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야기가 달랐다. 갑자기 ‘파인애플이 열리는 냉대기후용 침엽수’를 만들어 내라는 말에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예? 이걸 제가 해 보라고요?”
  “맞아. 너무 동물만 들여다보지 말고 식물 유전자도 한 번 살펴봐요. 이번 건 조금 촉박하네. 몽골 아르항가이 쪽에 진출해 있는 기업에서 요청이 온건에, 늦어도 내년 안에는 묘목을 심고 싶다고 하니 가능한 빨리 결과를 주어야 할 거야.”

  “예. 예….” 인간 유전자 연구에 일생을 걸겠다고 결심했던 자신에게 뜬금없이 식물이라니. 더구나 일이 수월해 보이지도 않았다. 다른 맡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작업해도 적잖은 기간 야근을 반복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대답하는 수민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
  
  환경이란 때로 잔혹한 것이다. 기온이 온화하고 4계절이 있는 지구 중위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일 년 내내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 하는 극지방, 사막 등 척박한 환경과 싸워야 하는 적도지방 국가에 태어난 사람들도 지구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에겐 물과 음식을 마련하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었다. 이들에게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한편 잔인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적어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20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육종혁명’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촌 누구나 식량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식량이 풍부한 국가로부터의 원조가 아니라, 자국에서 식량을 생산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불과 길이 수 ㎝ 정도인 잡초만이 돋아나는 몽골의 초원에서도,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에서도, 사하라의 사막에서도 쑥쑥 자라나는 작물이 필요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 일이 가능해진건 2035년 무렵부터다. 전혀 종류가 다른 두 종류의 식물을 교배할 수 있는 ‘식물종간 장벽제거기술’이 실용화 되고, 그 안전성 역시 증명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을 돕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한지역에서 자라는 침엽수, 사막지역에서 자라는 다육식물 등에 감자, 고구마 등의 뿌리채소, 밀과 벼, 귀리 등의 곡식을 교배한 형질 전환 식물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혹한의 극지에서도 기를 수 있는 곡식, 열대 사막지역에서 기를 수 있는 과일 등 새로운 품종이 사흘이 멀다 하고 발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5년. 이제 사막이나 동토에서 농작물을 기를 수 없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상식에 불과했다. 과거엔 척박하던 버려진 땅이 속속 거대한 농장으로 바뀐 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장의 구조도 바뀌어 갔다. 이렇게 혹서지역이나 사막, 열대지역 등에서 새롭게 작물을 기르려면, 먼저 식물종간 장벽기술을 이용한 품종개량이 필요하고, 식물마다 존재하는 ‘종 인식 단백질’을 찾아내고, 그걸 만들어내도록 식물 유전자를 고쳐야 했고, 이렇게 개발한 종묘를 분양해 사업을 벌이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이 분야는 이제 하나의 커다란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
 
  몇 날 며칠씩 일생 보지도 않는 식물 유전자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수민은 급기야 눈앞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연구의 실마리를 잡아 보고자 밤이 늦도록 퇴근도 하지 않고 연구실에 남아 있던 수민은 문득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았다. 데이터 팀장을 맡고 있는 권하선 박사가 빙그레 웃으며 뒤에 서 있었다. 수민은 연구소 첫 출근 날, 홀로 당황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해 단장실까지 데리고 가 소개해 준 적이 있는 하선에게 깊은 고마운 감정이 컸다. 

  “아. 안녕하세요. 팀장님.”
  “밤늦도록 뭐해요. 단장님이 수민 씨 요즘 바쁠거라고 하면서 빙긋 웃기만 하던데.”
  “… 와…… 단장님은 정말 모르는게 없네요. 무슨 아르고스(눈이 100개 달린 거인) 같아요.”
  “풉.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나이든 중년 아저씨가 능글맞아서 그런거지.”
  “단장님이 시키신 일이 있는데요, 저 공부할 겸 해 보라고 주신 것 같은데, 이쪽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실험 과정 중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요?”
  “인공지능 시스템을 써서 가상실험을 해야 하는데요, 데이터를 넣고, 확인하고, 그 출력을 확인하고, 하는 부분이 제일 어려워요. 저는 생명과학하는 사람이지 ICT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이걸 어떻게 하면….” 수민은 데이터 전문가인 하선이 뭔가 도움을 주려나 싶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단장님이 무슨 뜻으로 여기 가 보라고 했는지 알겠네요. 이것 한 번 써 봐요.” 하선은 핸드백 속을 뒤지더니 조그마한 데이터통신용 저장장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잠시만요…. 아…. 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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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민은 하선이 준 저장장치를 개인용 단말기에 연결해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인공지능으로 만든, 생명과학자들이 유전자 설계 및 편집을 할 때 데이터 입출력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었다. 이 프로그램 하나만 있으면 일이 몇 배는 빨라질 것 같았다. 데이터 처리 전문가 한 사람이 바로 옆에서 일을 돕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효율적으로 보였다. 수민은 이 프로그램을 홀로그램 화면에 띄워두고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제가 직접 도와드리지 못할 때 단장님이 쓰는 프로그램이에요. 물론 제가 만든 거고요. 여기저기 나눠주기는 뭐한 것이, 사람마다 설정을 달리해야 해서 시판하기가 힘들어요.” [2019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제10화  “그가 천재로 불렸던 이유” 참고]

  “…… 예? 예. 저… 고, 고맙습니다.” 갑자기 보물단지나 다름없는 선물을 받은 수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는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무뚝뚝하지만 후배를 아끼는 사람이에요. 수민 씨에게 기대도 크고. 믿고 따라주세요. 서로 도울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선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
 
  하선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수민은 빈 연구실에 홀로 남아 하선이 넘겨 준 어플리케이션(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앱이 단장의 연구 스타일을 철저하게 고려해서 만들었다는 점, 이걸 제대로 사용하려면 철저히 그의 연구스타일을 답습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 같은 게 뭐라고. 단장님은 왜 이러시는 거지.” 

  어느덧 자정이 넘은 시간. 수민은 퇴근 준비를 하며 개인용 홀로그램 단말기를 끄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짙은 밤하늘 속, 몇 번이나 바라봤던 연구단지 속 야경이 갑자기 거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이 지금까지 이뤄왔던 업적의 크기가 떠올랐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수많은 일을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연구자로서 분명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지만, 수민은 그 부담의 무게가 너무도 커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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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승민(에쎄넴) 
삽화 :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 : 이효준(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 지난 이야기

 

 

- 다음 이야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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