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인

[바이오로 열어가는 2035 미래사회 – “플라스틱 분해 인공미생물” 편]

제9화 “지구를 지키는 방법”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1월에 발표한

'2019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 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강현 박사, ‘메르스’를 잡았다”.

 며칠 사이 신문 헤드라인에는 연일 이런 제목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예방약’을 개발하고 돌아온 국가생명정보기술원 소속 강현 연구원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충분한 힘이 있었다. ‘강 박사와 만나 인터뷰를 하겠다’ 며 연구실 문 앞을 지키는 취재진 때문에 출퇴근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현은 어쩔 수 없이 집에 틀어박혔다. 직속 상사인 나형욱 단장과 논의한 후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홍보팀이 하도 졸라대서 보도자료를 낸 것이 실수였어. 그렇다고 자네 이름을 빼 버릴 수도 없잖은가.”

 나 단장은 현에게 영상통화로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짐짓 미안한 듯 이야기를 꺼냈다.

 “일반 기자들이야 그런데요, 과학전문 기자들은 해외 논문도 계속 체크하잖아요. 자료를 안 냈더라도 이틀만 지나면 결국 똑같았을 거예요.”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언론 응대를 하라는 소장님 지시가 있었는데, 내가 억지로 막았네. 자네가 외부 일정 소화하고 다니기 시작하면 올해 연구 계획은 전부 엉망이 될 거야.”

 “함께 연구했던 중국 연구팀 후이징 박사도 지금 현지에서 난리가 났다더군요. 그분은 아예 취재진을 피해서 한국으로 도망을 나오겠다고 그래요.”

 “아 그래? 그럼 둘이 연구소로 와서 나란히 기자회견이라도 하겠나?”

 나 단장은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는지 놀리듯이 말했다.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기자들 피해 도망 온 분한테 그게 무슨….”

 현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어찌 됐건 며칠 집에서 기본적인 일정만 확인하고 좀 쉬게나. 굵직한 실험은 다 미뤄 뒀으니 너무 염려 말고.”

 “휴. 알겠습니다.”

 현은 강 단장과 통화를 하면서도 책상용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로 손을 뻗어 e메일 함에 쌓여있는 취재요청서를 끊임없이 휴지통에 던져 넣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홀로그램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현의 표정은 일순간 일그러졌다. 신경 쓰이는 e메일 한 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편리함 만 생각하면 안 돼요.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을 내용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현은 그 e메일을 전자 서류로 옮겨 넣고 차근차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보낸 사람 란에 ‘사이언스피스 조아영 책임연구원' 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유명한 편이다 보니 현은 어이없는 제안도 수없이 자주 받는다.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든 사이비 연구성과를 현의 이름을 넣어 공동으로 발표하고 싶다는 사람, 연구제안서를 쓰는데 공동연구자로 이름 한 번만 넣어달라는 사람, 제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 등 별의별 요청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욕설이나 비난 등의 내용도 자주 받았다. 일부 종교 관계자들이 보기에 현은 ‘지구를 파괴하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신이 정해 놓은 유전자를 그대로 두지 않고 마음대로 편집하는 현을 곱게 보기 힘든 탓이다. 환경운동가들에게도 현은 그리 곱지 않은 존재로 비춰지곤 했다. 특히 과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건 없는 환경 보호론자’ 들은 현을 절대 곱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십 수년 사이에 새로운 흐름도 생겨났다. 인간의 발전적인 활동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과학으로 문제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환경운동 단체가 생겨나가 시작했다. 사이언스피스는 그런 NGO(비정부 기구)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실적은 적지 않았다. 바다 오염의 근원인 ‘적조' 의 생성과정을 원리부터 밝혀내고, 그 원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 하수 정화처리 시스템 등을 독자적으로 연구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방식이라 현재 세계 각국에서 앞다퉈 하수 정화 시설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현은 평소 그런 사이언스피스의 사상에 대해 나름 공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조 연구원이 보내온 e메일은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주 내용은 그간 이뤄진 현의 연구 활동을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국가와 사회의 주목을 받는 연구자로 성장했으면서도 환경문제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었다. 

 무시하면 그 뿐이었지만 현은 그 e메일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었다. 현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돌아오길 기대하고, 그만한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소홀히 한 부분도 있었다는 지적은 그간의 활동을 돌이켜 볼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현은 기지개를 켜고 앉아 조용히 답신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란에 “언제 말씀 좀 나눌까요?”라고 적고, 내용 란에도 단 한 줄만 넣었다.

 “연락을 주십시오. 직통 103683-56”.

 스마트 안경으로 바로 연결되는 직통 번호. 가족과 하선, 나 단장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통은 화상통화를 하려면 직통 번호가 아닌 ‘대기 번호’ 로 사전에 연락을 넣고, 수신 측이 승낙을 하면 서로 시간을 정해 통화한다. 하지만 직통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20여 년 전의 일반 휴대 전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화를 걸 수 있다. 자고 있을 때도 벨이 울려 전화를 받도록 요구할 수 있다. 화상통화가 일반화되면서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굳어진 문화다. 

 통화 요청은 현이 e메일 회신을 보낸 지 불과 몇 십분 만에 들어왔다. 화상에는 단아한 차림의, 그러나 다소 공격적인 표정의 여성 연구원이 보였다. 

 “예. 강현입니다.”

 현이 말했다. 

 “조아영 입니다.”

 아영이 다부진 말투로 말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듯해서 연락처를 드렸습니다. e메일로 주신 내용 이외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릴께요. 저희는 미세플라스틱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 중입니다.”

 “그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지 않았나요. 이미 몇 년 전부터 플라스틱도 분해할 수 있는 효소와 미생물을 쓰레기 처리장에서….”

 “것 보세요. 역시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시네요. 그건 대규모 쓰레기 이야기에요. 바닷속에 떠도는 미세 플라스틱의 농도는 지금도 계속해서 증가추세에….”

 아영은 갑자기 목소리의 톤을 올렸다.

 “아. 그런가요. 몰라서 죄송합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현은 실쭉해져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해양에 풀어 놓을 수 있는 미생물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듣고 보니 몇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생태계에 미치는 효과는요? 그리고 그런 미생물이 바다 속에서 살게 되면 플라스틱으로 된 적지 않은 시설물이 부식될 수도 있겠는데요.”

 “이 미생물은 미세플라스틱만을 먹이로 삼으니 생태계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염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 지상에 만든 인간의 시설물도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선박에서 떨어져 나오는 미세플라스틱도 먹어 치워 줄 거라서….”

 “좋은 생각이군요. 환경영향평가는 추후에 받기로 하고 일단 개발해 보시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희 말씀은….”

 “저보고 그 미생물의 유전체 설계와 합성을 봐 달라는 건가요.”

 “예…….”

 아영은 말꼬리를 흐렸다.

 “아시겠지만 저는 국책연구기관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결정 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 조건을 보아 긍정적으로….”

 “지구 환경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아영은 다시 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보세요. 이게 지금 도움을 요청하시는 태도입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투쟁적인 자세를 일관하니 바른 일을 하면서도 지지를 못 받는 겁니다.”

 현도 결국 따지듯이 말했다.

 “휴. 강 박사님 말고도 유전자 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어요. 저희도 여러 사람과 접촉해 봤구요. 하지만 다들 돈 이야기만 하고…, 강 박사님이 연구소에 보고하셔서 공식적으로 처리하더라도 그 비용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재단 입장에선….”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제가 언제 돈을 달라고 했습니까?”

 “예?”

 아영은 놀란 어조로 되물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현은 연구소로 정상출근하고 있었다.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일주일 사이 있었던 일은 어느덧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사무실로 출근한 현은 커다란 전자 종이에 오늘 새벽 발행된 신문을 내려 받아 한 장씩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현은 잠시 후 부리나케 스마트 안경을 고쳐 쓰고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봐요.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 저는 호의로 도와 드린거예요. 그걸 이렇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몇 년을 고심하던 연구입니다. 박사님 덕분에 큰 숙제가 풀렸는데, 그걸 저희 이름으로만 발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거야말로 염치없는 일 아닐까요.”

 “…….”

 “논문 절차가 지난주에 끝나다 보니 오늘 기사가 나갔나 봅니다. 혹시 절차상 문제가 있으신 건가요. 소속 연구소에 보고해 두신다고 해서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기사가 이런 식으로 나면, 이거 창피해서…….”

 “미디어엔 익숙하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아영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지만, 얼굴표정은 묘하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휴. 덕분에 내일부터 다시 집에 틀어박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통화를 종료하고 현은 짜증이 난다는 듯 신문 머리기사 제목을 다시 한번 읽었다. 거기엔 커다란 활자체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이번엔 미세플라스틱 문제 해결, 강현 박사가 또 해냈다… 환경재단 사이언스피스와 협업”

To be continued..

글 : 전승민(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삽화 : 조진호(과학저술가)

감수 : 이대희(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 김무웅, 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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